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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우는 스카이대학교 수학과 교수이다. 이른 나이에 교수로 임용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모교에 교수로 돌아올 수 있기를 막연하게 기대했었다. 박사 학위를 받고 삼 년 정도 박사 후 과정을 하다가 바로 스카이대학에 오게 됐다. 다른 학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스카이대학으로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자리가 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시우는 자신이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날은 학회 참석 차 덴마크 코펜하겐과 벨기에 뷔리셀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장기주차장에서 차를 출발해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다. 집이 있는 서초동으로 가는 길은 강변북로 보다는 올림픽대로가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우는 공항에서 집으로 갈 때면 항상 강변북로를 탄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 길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한강을 바로 옆에 두고 드라이브할 때만 느껴지는 운치가 있으며, 전방에 탁 트인 시야는 넓게 펼쳐진 광활한 하늘과 한강을 따라 늘어선 도시 풍경을 아울러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운이 좋아서 석양이 질 무렵 이 구간을 지나게 되면 산란된 빛으로 붉게 포장한 멋진 선물을 받기도 한다. 하늘도, 강물도, 빌딩마저도. 도시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마법이 펼쳐진다. 아주 잠깐 마주하는 마법 같은 아름다운 순간.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시우는 한강과 가장 가까운 바깥 차선으로 달리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다. 양화대교를 막 지나는 참이다.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한강 쪽을 본다. 위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로는 내려 쬐는 강한 햇살에 잔물결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난다. 이런 광경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긴 비행으로 쌓인 피로가 저절로 풀리는 기분이다. 서강대교를 지날 때 조수석에 놓여있는 전화기에서 벨이 울린다.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전화기를 들었고 고개를 돌려 발신자를 확인한다. 발신자 표시에 ‘임지나 ♥~’라고 뜬다. 시우의 여자친구이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떨어지자마자 잘 도착했다는 톡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굳이 운전 중이라는 걸 알면서 왜 전화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엄지 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옆으로 밀면서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전방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시우는 앞에 차가 꽉 막혀있는 걸 발견했다. 이십 미터 즈음 앞에 차들이 거의 서다시피 서행하고 있다. 조수석에 있는 전화를 받느라 전방 상황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고 차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앞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여보세요? 으아아악!" 깜짝 놀란 시우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비명을 질렀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사고 난 거야? 괜찮은 거야?" 지나는 시우의 비명 소리에 놀라 다급하게 물었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달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앞차를 들이 받고 말았다. 에어백 여러 개가 동시에 터진다. 최대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부딪치기 직전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서 앞차를 받았고 그 힘에 의해 시우의 차는 제자리에서 백팔십도 회전했다. 마침 뒤따라 오던 SUV차량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속도 제어에 실패하면서 시우 차 트렁크 옆 부분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자 이번에는 차가 한강 쪽으로 강하게 밀려나가면서 난간과 부딪쳤다. 난간은 완전히 박살이 났고 차체 반이 도로 밖으로 빠져 나갔다. 바로 아래는 한강이다. 부서진 시멘트 잔해가 아래로 떨어진다. 반만 도로에 걸쳐진 상태에서 차는 시소가 움직이듯 한강으로 떨어질 것처럼 흔들거린다. 몇 번을 흔들흔들하더니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했다. 차가 한강 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시우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문과 창문을 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지만 시우는 탈출을 위해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풍덩 소리를 내며 차는 강으로 빠졌다.
이때까지 전화는 계속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고 지나는 비명 소리와 사고 나는 소리를 번갈아 가면서 계속 들었다. 전화기에 대고 무슨 일인지, 괜찮은지 부르짖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차는 가라앉고 열어둔 문 안으로 물이 밀고 들어온다. 계속 가라앉는다. 가까스로 가라앉는 차 밖으로 탈출했다. 강 깊은 곳까지 내려온 것 같다. 의식이 희미해져 간다. 의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이미 물을 많이 먹었고 숨 참기는 버거운 상태다. 심장은 갈비뼈를 부술 기세로 강하게 뛰고 허파는 매섭게 타 들어가는 느낌이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시우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위를 향해 팔다리를 휘저었다. 온 힘을 다해 헤엄쳐 수면 바로 밑에 겨우겨우 다다랐다. 물 밖으로 튀어 나오면서 하늘을 향해 거친 숨을 내뱉는다. 힘껏 숨을 몰아 쉬며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본다. 다행히 땅이 가까이 있다. 팔을 몇 번만 저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수영을 해서 물 밖으로 나왔다. 엎드려서 가뿐 숨을 몰아 쉬다가 먹은 물을 그대로 게워냈다.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정신이 몽롱하다. 저 멀리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시우는 바로 의식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병원이었고 가족과 지나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미 여러 군데 수술을 마치고 난 후였다. 왼쪽 팔과 다리 그리고 뇌수술을 했다. 뇌수술을 받았다는 말에 시우는 부분적으로라도 사고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되면 수학자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술을 집도한 뇌신경외과 전문의 남준우 박사는 수술이 아주 잘 됐고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말에 시우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 뿐만 아니라 신체 어느 한 곳도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할 정도의 부상은 당하지 않았다. 다만 장기간 치료와 재활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차가 크게 충돌하고 한강으로 추락하는 대형 사고였는데도 이 정도 밖에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믿기지 않았다. 시우의 사고는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됐고 잠시 세간의 화제거리로 관심을 받았다. 이유는 일 년 전에도 똑 같은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젊은 여성이 운전을 하다가 강변북로 같은 구간에서 충돌 사고가 나면서 한강으로 추락했다. 같은 구간에서 같은 사고가 짧은 기간 내 반복되는 것은 인재라는 식으로 많은 언론에서 다루었다. 그녀도 남준우 박사에게 뇌 수술을 받았고 완전히 회복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시우는 그 소식에 더 안심이 됐다. 일 년간의 치료와 재활의 예후도 매우 좋았다. 몸 여기저기 흉터만 약간 있을 뿐 어느 한 곳 통증이 남지 않고 말끔히 치료됐다. 뇌수술 자국은 머리를 기르니 감쪽같이 감춰졌다. 어떠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생기지 않았다. 물을 무서워하거나 운전이 두렵거나 하는 것도 없다. 몸은 완전히 사고 전 상태로 돌아갔다. 완전히 좋아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이상하기도 했다. 사실 많이 이상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의사에게 물었을 때 확률적으로 매우 드물지만 그런 낮은 확률의 일도 얼마든지 세상에는 일어난다는 답을 들었다.정말 이상한 일은 학교로 복직 준비를 하면서 발생했다. 시우는 이미 풀이 방식을 알고 있는 수학 문제를 보면 보자마자 답이 떠올랐다. 잠시 머릿속에서 회로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더니 바로 정답이 떠오르는 것이다. 도저히 암산으로 풀 수 없는 복잡한 문제도 보자마자 계산이 된다. 계산을 하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전혀 다른 유형의 문제를 봐도 똑같다. 머릿속에서 회로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고 답이 떠오른다. 다른 문제, 또 다른 문제, 어떠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도 바로 바로 계산이 되고 증명이 됐다. 다만 이미 풀이 방식을 알고 있는 한에서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사람의 머리만으로는 바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아니다.’
아무래도 뇌수술의 영향인 거 같다는 생각에 시우는 남준우 박사를 찾아갔다.
“뇌를 크게 다치거나 뇌수술로 머리가 갑자기 좋아질 수가 있나요?” 시우가 물었다.
남박사는 LCD 모니터로 그간의 치료 기록을 살펴 보고 있다. “지금 뇌수술을 하고 나서 머리가 좋아질 수 있는지 물으셨나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네 그렇게 물어 본거 맞아요. 확실히 머리가 좋아졌습니다. 사람의 머리로 도저히 풀기 불가능한 수학 문제를 보자마자 바로 암산으로 풀 수가 있어요.”
남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계속 보면서 말한다. “음.. 수술하고 나서 치료하는 과정이랑 최근까지의 검사 결과를 살펴보면요. 외부 자극에 대해 입력, 출력하는 뇌기능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시각, 청각, 촉각, 지각, 판단, 반응, 기억, 추리, 상상, 공감. 이런 인지능력도 모두 정상이고요. 굳이 이상한 점을 말하자면요.”
“네? 어떤 이상한 점이 있는 거죠?” 시우가 물었다.
“이런 큰 수술을 받고 치료했던 제 환자 중에서 주시우님만큼 회복 속도가 빠른 환자는 없었다는 겁니다. 단순히 조금 빠른 편이 아니라 매우 예외적으로 빠른 편이에요. 이렇게 빨리 회복하는 경우는..” 남박사는 잠시 생각한다. “주시우님 말고 한 분 더 있기는 했습니다. 어쨌든 이상할 정도로 회복이 빨랐는데, 그게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고요. 뇌수술을 하고 나면 일정 기간 동안 부작용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작용이요?”
“네. 환각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꽤 흔하게 나타납니다. 지금 주시우님이 겪고 있는 증상도 환각 증상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 풀었던 수학 문제를 기억하고 있다가 자신이 바로 풀었던 것으로 뇌가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일반 사람에게서도 뇌의 착각은 매우 흔하게 일어나거든요.”
“선생님,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요.”
“금방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 기다려보죠. 증상이 지속된다면 그때 검사를 해봐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머리가 좋아진 증상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통증이 심하거나 기억상실증이 있다거나 하는 이런 부작용에 비하면 착한 부작용 아닐까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 네.. 그렇긴 하지만 너무 이상해서요. 그럼 혹시 머리가 좋아졌다고 느끼는 뇌수술 환자 사례를 본적이 있으세요?”
“그럼요. 비슷한 환각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그런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머리가 좋아졌다고 느끼는 사례가 있어요. 차차 증상이 나아질 겁니다. 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시우는 남박사의 말에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저 말고도 이런 경우가 있기는 한 거네요.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