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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Dec 07. 2019

‘아이리시맨’ 마틴 스코세이지와 넷플릭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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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Netflix)가 처음으로 극장용 영화를 제작하면서 선택한 감독이 봉준호와 노아 바움백이라는 것을 듣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디오와 DVD를 우편으로 대여하는 사업을 시작으로 큰 성공을 거둔 넷플릭스는 세상의 변화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세계 최대 영상 스트리밍 업체가 되었다. 변화에 적응했다는 말보다 선도한다는 표현이 어쩌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온라인 영상 유통 시장에서 다운로드가 대세이던 때 월정액을 받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한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넷플릭스는 영상 제작에 까지 손을 뻗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온라인 영상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사업적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나는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영상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첫 문장에서 언급했듯이 극장용 영화를 처음 제작하면서 작가주의 감독이면서 대중성도 겸비한 두 감독을 콕 짚었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넷플리스가 제작한 봉준호의 ‘옥자’와 노아 바움백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는 그 해, 2017년 칸 영화제의 경쟁 부분에 초청을 받았고, 당시 극장 개봉과 스트리밍을 동시에 하는 문제로 칸 영화제 측과의 심각한 트러블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칸 영화제는 다시는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영화를 초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만들고 넷플릭스가 제작한 ‘로마’는 그다음 해인 2018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장을 거머쥐었다. 엄청난 자본력으로 작가주의 감독이면서 대중성을 지닌 감독 영화에 투자를 했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영화 제작자나 언론들 중에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감독 중 일부가 상업적으로 흥행도 하고 있지만, 유럽에서 예술 영화감독으로도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넷플릭스의 선택은 매우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가 제작비를 투자받지 못하여, 10년 동안 제작이 지연이 되고 있던 ‘아이리시맨’이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3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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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후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육류를 배달하는 트럭 운전사 프랭크(로버트 드니로)는 마피아가 운영하는 식당에 공급하는 고기를 빼돌린다. 이런 프랭크의 대담함을 본 마피아 조직의 중간 보스 러셀(조 페시)은 보스인 안젤로(하비 카이텔)를 설득해 그를 제거하지 않고 암살의 임무를 주어 조직원으로 끌어들인다. 주어진 암살 임무를 매번 깔끔하게 처리하는 프랭크를 러셀은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화물운송 노조의 위원장인 지미(알 파치노)에게 소개를 한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프랭크는 마피아 조직원으로 암살자가 되고, 화물운송 노조의 노조원으로써 위원장 지미의 오른팔의 역할을 오랜 세월 해나간다. 노조원들의 연금을 횡령한 혐의로 케네디 정권에 표적 수사를 받는 지미는 케네디의 아버지를 통해 로비를 하여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감옥을 가게 된다. 감옥을 갔다 온 후에도 노조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지미는 노조원의 연금기금을 마음대로 흔들어대면서 마피아 조직원들과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오랜 시간 노조에서 함께 일을 한 지미를 암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러셀로부터 프랭크는 전달받는다. 결국 프랭크는 명령대로 지미를 권총으로 암살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든 마피아 조직원들은 여러 가지 죄목으로 하나 둘 감옥에 가고 거기에서 병들고 죽기도 하고 쇠약해진 몸으로 출소를 하기도 한다. 많이 축약이 되었지만, 이것이 ‘아이리시맨’의 주된 줄거리이다.


‘아이리시맨’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카지노,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 디파티드 등과 같은 전작들에 비하면 화려한 카메라 워크와 편집 그리고 거칠고 잔인한 언어와 폭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카메라는 유려하고 느리게 움직이고 살인과 폭력을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서사는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플래시백을 통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도 아니다. 노인 프랭크의 보이스 오버를 중심으로 특별한 규칙 없이 프랭크의 청년, 중년, 장년의 시대를 비선형적으로 오고 가면서도 서사를 아주 매끄럽게 끌어간다. 이렇듯 ‘아이리시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와 기업들이 어떻게 자본을 중심으로 폭력, 권력, 정치, 욕망 등이 비선형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뒤얽혀 성장해왔는지를 마피아 조직을 빗대서 보여주고 있다. 오랜 세월 함께한 프랭크, 러셀, 지미의 우정은 돈 앞에서 쉽게 무너지고 만다. 러셀과 지미를 중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그들의 인간적인 관계는 돈과 권력 앞에서는 휘발성이 너무 강해 한 순간에 날아가버린다. 프랭크도 이러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지미를 살해한 것 때문에 가족과도 멀어진 프랭크는 그 시대에는 그렇게 살았을 뿐이지 거기에는 어떠한 후회도 남아있지 않고, 그저 다가올 자신의 죽음만을 준비할 뿐이다. 이렇게 ‘아이리시맨’은 돈을 중심으로 한 욕망과 폭력은 공기처럼 보이지 않게 우리를 감싸고 있으며, 살아온 시간과 함께한 관계의 감각과 감정은 철저하게 무력해지는 것을 느리고 유려하게 3시간 30분 동안 참담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리시맨’의 세상에 대한 냉소적이고 허무하고 염세적인 시네마틱한 이미지들은 보는 관객에게는 거꾸로 무뎌진 관계의 감각과 감정을 깨워주고 편향적인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강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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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덕분에 ‘아이리시맨’을 볼 수 있어 고맙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단지 전통적으로 영화를 유통하고 소비하는 방식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우려만은 아니다. 넷플릭스가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의 영화가 예술적으로도 가치를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극장용 영화로 제작하는 부분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상업적이면 예술적이 아니고 예술적이면 상업성을 추구하면 안 된다는 식의 단순하고 우매한 이분법적인 논리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성취한 영화감독들의 사례는 무수히 많아, 이 둘이 양립하는 것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은 오래전에 입증이 되었다. 다만 영화라는 기술적 예술 매체는 자본 없이 제작될 수 없기에 권력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리는 것이 위험하다. 투자, 제작, 배우, 배급 등 영화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힘의 균형이 적절하게 유지될 때 다양하고 좋은 작품이 지속적으로 생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넷플릭스에 투자를 받아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인터뷰에서 스트리밍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시네마로써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소신 있는 발언을 하였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가 되면서 다가 올 시대의 시네마에 대한 정의와 관람 형태에 대한 담론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서 내가 걱정이라고 말한 것은 어쩌면 막을 수 없는 변화 앞에 영화라는 미디어의 새로운 지평과 환경 변화에 대한 궁금증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큰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사운드 설계가 잘 되어 있는 영화관에서 누군지 알 수 없는 많은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은 욕망은 내 안에 계속해서 남아있다. 어쨌든 어쩌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는 ‘아이리시맨’을 3시간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번도 끊지 않고 볼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해 준 넷플릭스에 고맙다는 말을 살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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