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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월 Aug 02. 2024

꺾인 날개로 날갯짓을

랩을 포기하게 된 과정과 교훈

 전 앨범의 트랙넘버까지 달달 외울 정도로 좋아했던 다이나믹듀오. 그리고 한국힙합팀 중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던 슈프림팀. 랩을 좋아하던 나는 그들의 첫 만남 이야기를 듣고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슈프림팀이 다이나믹듀오의 공연 대기실을 찾아가 "짜장면 한 그릇 사달라"라고 하여 친해졌다는 이야기. 나를 흥분케 한 것은 이야기에 묻어있는 진한 낭만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 또한 언젠가는 그들의 대기실에 찾아가 같은 방법으로 친해질 수 있으리란 기대가 한 몫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만난 K. 당시엔 힙합을 좋아하는 아이가 드물었다. 그래서 "니 다이나믹 듀오 아나?" "어." "그럼 소울컴퍼니는?" "알지." "가리온은?" "안다."의 면접과정을 거쳐 녀석의 '힙합 수준'이 나와 동급인 것을 확인한 나는, 녀석을 힙합메이트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곧잘 어울려 다녔다. 힙합음악을 듣고 그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 우리는 돈을 모아 슈어의 SM58이란 마이크를 사고, 쿨에딧이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녹음을 시작했다. 힙합으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우리의 팀명은 HHH. 작업곡을 주변에 들려주고 그 반응을 듣는 것은 중독성이 강했다. 자아가 채 형성되지 않은 중학생 시기의 또래 사이에서 명확한 진로를 말하고 그에 대한 증거로 작업곡을 들이미는 것은 일종의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였다. 

 그렇게 지역의 한 힙합크루인 '매니악셀'에 입단한 우리는 옥포 청소년 문화회관에서 'FEELUS'란 크루랑 랩배틀을 하기도 하고, 엠파크 앞 거리에서 버스킹이나 문화축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래퍼가 되는 거겠지, 다이나믹듀오와 슈프림팀과 함께 짜장면을 먹을 수 있겠지, 그런 막연한 생각들로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시간을 채워나갔다.

 K와는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3년 내내 반이 엇갈렸다. 주말이면 함께 공연연습을 했음에도 자연스레 멀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가끔씩 떠오르는 진로에 대한 불안은 내가 가진 특유의 낙천성으로 억눌렀다. 그러나 K는 그보다 현실적인 성격이었다. 2학년이 되었을 무렵, 복도에서 K가 말했다. "나 이제 랩 접고 공부할라고."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다이나믹듀오와 짜장면 먹겠다던 꿈은? 우리가 여태껏 해왔던 노력은? 혼자 남겨지면 나는? 그런 의문들이 내 속을 가득 채웠고, 이내 곧 K를 향한 실망과 앙금으로 바뀌었다. 나는 랩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K의 배신으로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힙합으로의 추진력을 잃은 나는 점차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리더를 맡고 있던 '매니악셀'크루도 해체해 버리고, 내신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랩은 그냥 취미가 되었고,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진로를 못 정한 청소년' 중 하나가 되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K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사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당장 오늘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나중엔 무언가가 되어있을 거란 착각. 우린 그런 상태로 몇 년을 보냈던 것이다. 우리의 느릿한 질주를 그때 멈추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트랙 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막연한 꿈에 취해 행복해하는 것은 실은 가장 불행한 상태이다. 안개가 자욱하고 질펀한 뻘밭을 한 걸음씩 전진할 의지가 없다면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용기인 것이다.


 이제는 멀어진 친구 K도, 가끔씩 노래방에서나 부르게 되는 랩도 모두 추억처럼 그 자리에 있다. 언제 보게 될지 모르고, 언제 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차게 펼쳤던 날개는 비록 꺾이더라도 역할을 한다는 것. 그 교훈으로써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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