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외갓집에서 보내는 날이 많았다. 부산 금사동에 위치한 오래된 빌라에선 은은한 목재향과 함께 조부모의 몸에서 배어 나온 세월의 향기가 따뜻하게 깔려있었다. 족발집을 운영하던 조부모는 바지런했고, 그들의 빈자리는 외증조할머니, 일명 왕할머니께서 채워주셨다. 왕할머니는 늦은 밤 잠자리가 바뀌어 늦게까지 떠들던 형과 나를 재우려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어릴 때엔 할머니의 배가 불룩한 이유가 이야기를 많이 넣어놔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금사동 빌라 맞은편엔 작은 동산이 있었다. 불 꺼진 금사동의 밤거리는 으스스했고, 달빛에 비추인 동산은 우리 형제를 쏘아보는 듯해서 왕할머니에게 안기기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를 들으며 잠든 다음날 아침, 형은 동산에서 백두산 호랑이를 봤다고 했다. 이마에 왕(王) 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분명 백두산 호랑이라고. 나는 나타나고야 말았구나! 생각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곳에서 한 밤을 더 자면 물려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말을 들은 왕할머니는 전혀 무섭지 않아 보였다. 나는 사람이 늙으면 무서움도 함께 늙는 것인가 싶었다.
가족들이 모여 아침식사를 할 때, 왕할머니는 형의 그 거짓말이 귀여웠는지 어른들에게 일러주었다. 어른들은 네가 잘못 본 게 아니냐며 적당히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어주었지만, 형은 꿋꿋이 증언을 이어갔다. “분명 백두산 호랑이였어요.”
금사동에 갈 때면 늘 회동동 통닭을 시켜 먹었다. 쿠폰을 열 개 모은 줄 알고 공짜 통닭을 요청했다가 쿠폰 중에 하나가 가게홍보 명함인 것을 발견하고서도, “손주들 오셨는데 하나는 제가 낼게요.” 하던 인심 좋은 아저씨가 운영하던 통닭집이었다. 외갓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왕할머니는 우리를 안으며 “아이고 우리 강아지들 왔나.” 하셨고, 우리는 왕할머니에게 차례로 안기며 “통닭 사주세요.” 했다. 그러면 왕할머니는 목을 뒤로 빼며 “예끼! 이놈들아! 할머니가 통닭으로 보이나!” 하시면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네~!”라고 대답하곤 하였다. 왕할머니는 늘 조끼 주머니에 통닭 살 돈을 고이 접어 넣어두셨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어 주시며 “애나, 시켜라.”라고 하셨다.
왕할머니는 1923년생에 태어나셨으니, 올해로 101세에 접어들었다. 어린 날의 내가 기특하게도 “백 살까지만 사세요.”라고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동안 왕할머니에겐 약간의 치매 증세와 쇠약함이 찾아왔다. 어느 날 외갓집에 방문하여 왕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다가, 침대에 이불보 대신 비닐이 씌워져 있는 것을 보고 “불편하게 왜 비닐을 까셨어요?” 여쭈었다. 왕할머니는 잘 들리지 않았던 모양인지 나를 빤히 쳐다보고 계셨다. 나는 곧바로 비닐이 깔린 이유를 짐작하고서, 못 들으신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세월의 야속함에 마음이 아려왔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우리 형제의 얼굴을 씻겨주던 할머니. 사실은 그의 젊음을 우리 얼굴에 펴 바르던 것이었다.
외갓집에 가면 왕할머니가 계시지만, 내가 알던 왕할머니는 육신 안에 갇혀있는 듯해서 어쩐지 슬프기만 하다. 금사동의 백두산 호랑이 전설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이렇게라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