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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월 Aug 30. 2024

아버지의 푸드트럭을 못 본 척 지나치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웠다. 양담배 대신 국산담배를 피우는 것이 돈 몇 푼을 아끼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애국심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타임이라고 적힌 국산담배의 파아란 담뱃갑이 내 눈엔 제법 예쁘게 보였다. 그는 아홉 시면 뉴스를 틀어놓고 베란다에 나가 담배 한 개비를 왼 입술에 끼워 물고 불을 붙였다. 그의 앞엔 프레스코의 파스타 소스병이 재떨이로써 놓여있었다. 노란 뚜껑의 병엔 담배꽁초가 한가득 꽂혀있었고, 자작한 물은 재를 머금어 시꺼멓게 물들어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울 때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일이 많았다. 모토로라의 휴대전화로 조선소 일을 하며 알게 된 전 직장동료와 통화하는 것이 일반이었다. “아이고 형님 그래도 쫌 버티지 처자식도 생각 안하요.“ 그렇게 말하는 그였지만, 막상 몇 달 뒤면 회사를 관두고 내가 학교를 가는 시간까지 거실에서 곤히 잠들어있곤 했다.


 조선소 일에 싫증이 난 것이었는지, 어느 날은 푸드트럭을 인수했다. 핫도그와 떡튀김, 레모네이드 등 간식거리를 파는 노란색의 트럭이었다. 트럭은 인파가 몰리는 곳, 그리고 주전부리를 선호하는 고객이 많은 곳을 골라 장소를 옮겨 다녔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 하굣길도 그중 하나였다. 친구들을 인사시키고 간식을 공짜로 나눠준 날 저녁, 아버지는 베란다 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며 넌지시 물었다. "아빠 안쪽팔리드나?" 나는 티브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한 듯이 답했다. "쪽팔릴 게 뭐 있어요. 맛있는 거 많이 먹어서 좋은데." 아버지는 묵묵히 끽연을 마치고 거실로 들어오며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금방 또 관두게 될 조선소 일은 두렵고, 아들이 지나다니는 학교 앞에서 코 묻은 돈을 벌자니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터였다. 나의 말 한마디가 그의 무너진 자존심을 일으키는 데에 얼마간 도움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내가 못 본 척 트럭을 지나친 적이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를 것이다.


 인구가 많지도 않고, 인파가 몰리는 행사도 드문 곳이니 장사가 잘될 리가 없었다. 푸드트럭은 갈수록 골칫덩이가 되어갔고, 양친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양친에게 치킨을 먹고 싶다고 얘기했다. 아버지는 양반다리를 하고 티브이 리모컨을 손에 쥔 채,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니 핫도그 하나 팔면 얼마 남는지 아나?" "모르겠어요." "500원 남는다 500원. 그럼 치킨 한 마리 만 오천 원이면 핫도그 몇 개를 팔아야 되노?" "30개요." "그래. 핫도그 30개 팔라면 얼마나 힘든지 니 아나?" 나는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설득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서러움이 섞인 충격에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아, 이제 아버지의 세상은 500원짜리로 환산되는구나. 치킨은 500원짜리 30개, 내 학원비는 500원짜리 300개, 티브이는 500원짜리 2,000개... 모든 사물이 500원짜리로 환산되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 그 세상에 속하는 것이 무척 불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단코 500원짜리의 세상에 갇혀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날 이후 학교 앞에 트럭이 멈춰 있을 때면 모른 척 반대편 길로 지나치곤 했다. 그렇게 500원짜리의 세상을 지나친 나는, 지금도 푼돈에는 개의치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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