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비혼주의를 주장하고 다녔다. 이유를 구태여 밝히진 않았지만, 혼자 살 때의 장점을 나열하며 그것을 이유 삼았다. 숨겼던 진짜 이유는 내게 내려진 저주이자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 같았다. 나는 혼자서 살아야만 하는 팔자를 타고났고, 그것이 내 의무라고 여겼다. 나의 비혼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지금의 아내이다. 구원을 받은 지금은 한층 홀가분한 기분으로 진짜 이유를 털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북한 출신이었다. 친부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 집안은 평안도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흉년이 들면 곳간을 열어 구휼하였고, 그 집안의 땅을 지나지 않으면 마을에 이를 수 없을 만큼 넓은 지대를 가졌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동경에서 유학을 하였으며, 군인이던 시절 6.25가 터져 부하 병사 하나와 함께 38선을 넘어 남하했다고 한다. 그 일의 여파로 대단한 집안임을 입증할 수 있는 족보가 사라졌으며, 피난민이 모여 살던 부산 영도가 내 친부의 고향이 되었다. 이야기를 들을 당시엔 나의 뿌리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의심되는 것이 있었다. 평안도의 너른 땅을 갖고, 동경으로 유학을 다녀올 정도의 집안이라면 과연 친일을 하지는 않았는가, 그리고 그런 부잣집 아들이 왜 군인이 되었었는가, 하는 것들이다. 어쩌면 민족적 혼란을 기회 삼아 이전의 삶을 되도록 휘황찬란하게, 그리고 이후의 삶을 전란에 빼앗긴 피해자로서 살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하여 내게 물려줄 것이 부(富)나 토지, 또는 품위에 대한 교육 같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마음 편히 살게 해 줄 피해망상과 중증 이상의 허언밖에는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실은 아무래야 알 수 없게 되었고 안다고 한들 달라질 것도 없지만, 친할아버지가 쓰던 말이 생생한 북한식 억양이었으니 나의 본적(本籍)이 북에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리라.
친할아버지는 엄한 사람이었다.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날이면 5남매를 서슴없이 때렸고, 어떤 날은 기껏해야 국민학생이던 친부의 목을 게거품을 물때까지 조르기도 하였으니 매정한 인간이라 할 수 있겠다. 한평생 돈을 벌지 않았고, 친할머니가 벌어오는 돈으로 호의호식하였으니 양반집 자제라는 말만큼은 사실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친부와 고모들은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아끼다가도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지면 서로를 죽일 듯이 욕하고 힐난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화해를 하면 다시 둘도 없는 형제가 되어 똘똘 뭉쳤다. 그들은 그것을 ‘다혈질’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 보기엔 정신병 같았지만, 그들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성격의 일부로 치부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도구로 삼았다. 얼었다 녹았다 하는 급격한 온도변화에 돌이 쪼개어지듯, 나는 그들을 이해하기를 포기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피가 내게도 흐르고 있음을, 그리하여 이 더러운 피를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 결론짓고 비혼주의에 이른 것이었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하던 시절, 우리에게도 숱한 다툼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혈질’ 답게 말꼬리를 잡고, 그것을 과대 해석하여 윽박지르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의 아내는 침착하게 오해란 것을 일깨워주고, 나의 성급한 행동이 불러올 파급효과를 설명하며 나의 기질을 진정시켰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나는 나의 친부를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 나는 ‘다혈질’이란 것이 그저 가해자의 변명임을 안다. 그 얄팍한 방패막이는 사실 자기를 통제하지 않았음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스스로를 다혈질이란 방패 뒤에 숨어 비겁하게 화를 내는 대신, 소중한 것을 소중히 대하고자 한다.
소중한 것은 늘 그 자리에 있어 주지 않는다. 어머니의 젊음이 그렇고, 영원할 것 같던 우정이 그렇고, 날씨가 좋은 날의 산책이 그렇듯. 그리스의 한 철학자는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옳은 말이다. 변해가는 모든 것이 소중한 것은 아니지만, 소중한 것은 모두 변하기 마련이니까 더욱 소중히 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리한 더위가 물러가고 계절이 바뀌고 있다. 다가오는 계절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소중한 것을 더욱 소중히 대하겠다고 다짐하며 창을 열어 바람을 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