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의 고찰
커피의 쓴맛밖에 모르던 것이, 이제는 에스프레소도 곧잘 마시고 아메리카노도 받아먹는다. 아인슈페너를 마실 때면 마부가 되어 말 위에 올라탄 듯 힘겹게 마셔본다. 스트라파짜토를 마실 때엔 입술에 초코 가루가 좀 묻어도 괜찮다. 자허토르테를 먹을 때는 멜랑지를 빼놓을 수 없다. 에스프레소엔 라빼르슈 각설탕 하나를 녹여먹어야 맛있다.
취향은 계속해서 변한다. 어릴 때엔 싫던 것이 자라고 보니 괜찮다. 취향도 자라는 모양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지 않았다면 구룡포 과메기 맛을 아직도 몰랐을 것이다. 이제는 붕어빵에 슈크림보다 단팥이 더 달다. 기분 좋은 날이면 콜라를 찾는 나지만, 위스키 한 잔쯤은 즐길 수 있을 것도 같다.
취향(趣向)은 뜻이 향한다는 말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여러 곳에 뜻을 두는 것. 누군가는 아침에 일어나 환기시키는 것에 뜻을 두고, 누군가는 커피 한 잔을 내리며 그 내음을 맡는 것에 뜻을 둔다. 나의 뜻은 차가운 쇠젓가락 대신 미지근한 나무젓가락을 쓰는 것에 있다. 사람은 저마다의 순간에 뜻을 두고, 그 사이를 유영하는 존재다.
취향은 나를 타인과 구분 짓고 정의 내리는 잣대다. 내가 소유한 물품들은 취향의 반영이요, 죽고 난 후 나를 기리는 제단이 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 나의 보물들을 나열하면 감이 잡힐지도 모른다.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취향을 알아내기 위해 이것저것 캐묻는 것 아니겠는가? 취향이 없는 삶은 더없이 지루할 것이다. 나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여 그 사실을 공표할 때, 나는 나와 더 친해진다.
책은 다소 무겁더라도 하드카피가 좋다. 대부분의 하드카피엔 가름끈이 있기 때문이다. 형광등보단 무드등을 켜고 생활한다. 쉽게 지치는 내 눈을 위한 배려다. 속이 비치는 투명 컵도 좋지만, 물방울이 맺히지 않는 스텐컵이 편하다. 점심 메뉴를 정할 때엔 음식보다도 나무젓가락이 있는지의 여부로 결정한다. 이런 나의 취향을 보며 누군가는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취향은 나이 들수록 많아지고 확고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 중 일부이니 그다지 억울할 것이 없다. 내가 산 오늘만큼 늘어가는 나이, 늘어가는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