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 책은 순전히 나를 위한 책이다. 요즘 나는 삶에 큰 흥미가 없다. 눈을 뜨면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는데, 그 일들이 나를 살아 있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살맛이 안 나는 이 삶에, 다시 삶의 맛을 찾아보려는 기록이다.
나는 지금, 스스로도 웃길 만큼 ‘에세이’를 쓰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에세이를 즐겨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주하기 싫어했다. 에세이를 읽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 느긋할 수가 있나?’ 싶었다. 할 일이 산더미 같은 내게 남의 사는 얘기를 읽는 건 사치였다. 책은 정보를 얻는 도구였고, 문학은 그... 수능 보라고 쓰인 지문이 아닌가?
그러던 내가 이제 에세이와 문학에서 삶의 이유를 찾는다. 누군가의 기록이 내 삶을 이끈다. 바쁘다던 삶에 사치스럽게 음미할 짬이 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냥 나이가 든 걸지도. 문장 속에서 누군가 살아 있는 기척이 느껴질 때, 그게 그대로 내 안의 감각을 건드린다. 반복되는 것 같던 매일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에세이를 쓴다. 살기 위해서, 살았다고 말하기 위해서.
모르긴 몰라도 나의 지난 10여 년 간은 대한민국 사회의 평균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앞으로의 살 날을 걱정했고,
인턴과 계약직으로 한 몸 바친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모두가 그렇듯 일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일인 줄 알았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몸도 마음도 갈려 나가는 줄 모르고 꽤 오래 버텼다.
결국 사내정치 판에 치이며 퇴사를 결심하는 평균이었다. 아주 흔한 이력. 다만 그 이후가 조금 달랐다.
나는 회사를 '퀵클리' 그만뒀다. 이걸 뭐 자랑이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퇴사가 무조건 정답이라고 믿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든, 회사든, 집이든, 프리랜서 사무실이든, 나처럼 요가원이든. 자신이 몸담은 곳에서 삶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그걸 말하고 싶다. 삶은 어떤 환경에서든 존재하고, 우리는 다만 그 삶을 느끼는 감각만 깨우면 된다. 입맛처럼, 삶맛도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자주, 제대로 느끼느냐다.
그걸 어떻게 느끼냐고? 우선 뭐가 삶의 맛인지를 알아야한다. 그래야만 순간 순간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을 떠올리고, 그 순간이 왜 그랬는지를 곱씹어보자. 삶의 맛들은 하나의 카테고리로만 묶이지 않는다. 가슴 뛰는 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 도무지 이유는 설명 안 되지만 그냥 내 안이 ‘움찔’하고 눈이 '반짝'이는 일들.
자신을 이미 정해진 틀에 맞추려 하지 말고, 더 넓고 열린 마음으로 탐색해 보길 바란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누군가 나에게 “식사하셨어요?”라고 물어보는 순간. 그 평범한 인사 속에서, 나는 배꼽 근처에서부터 따뜻한 감사가 올라온다. 그건 단순한 안부가 아니라 ‘당신, 정말 잘 지내고 있나요?’라는 사랑의 언어로 들린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아, 나는 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구나.
하나 더 내보이자면,
나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멋진 자선사업가 키다리 아저씨의 철학은 아니고, 그저 나중에 오른손이 우연히 알게 됐을 때, ‘와, 그때 진실된 사랑으로 했구나’ 하고 알아주길 바라서 이다. 그걸 알아주면 내가 더욱 깊이 감사해지니까.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한 행동이 훗날 문득 드러나는 순간. 그럴 때마다 내 안에서 '이게 바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구나, 이게 같이 사는 거구나' 하고 조용히, 뜨겁게, 느낀다.
너무 변태 같은가? 그래도 어쩌겠어. 이게 나다.
서두에 요즘 삶이 재미없다고 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삶의 감각이 조금씩 깨어났다. 입맛도 조금, 삶맛도 조금 난다. 물론 이 책이 나만 좋자고 쓰는 건 아니다. 내가 발견한 삶의 이유들이 독자의 마음 어딘가에도 닿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삶의 맛’은 종종 놓친 채 살아간다. 그 감각을 잠깐 멈춰서 느끼는 시간. 그게 바로 이 책이 주려는 ‘한 입’이다. 인스타그램 10분만 덜 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자, 우리 한 번 맛 있게 살아보자. 어떤 맛으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