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1>
내가 다니던 회사는 대부분 정규직들이 계약직을 거쳐 채용된 곳이었다.
그러면 오히려 계약직에 대한 배려가 살뜰해야 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절-대 아니었다.
‘나도 그 고통 알아, 힘들지. 근데 다 지나가’라는 말 한마디로 거들먹거리기 위해서라도,
타인도 똑같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야 자신이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착각할 수 있으니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받았던 설움을 앙갚음하듯 갑질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어리바리함이 덜 가신 2년 차 계약직이었다.
있는 눈치 없는 눈치 다 보며 살금살금 회사생활을 하던 시절.
‘회사에 놀러 간 것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러면서도 정 빼면 시체인 성격에 계급이 명확한 회사에 편안하게 적응하긴 어려웠다.
이렇게 말하면 결국 적응한 이야기로 이어져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끝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하루는 사수와 회사에서 새로 조성한 공간을 둘러보러 갔다.
직원들의 노고로 일궈낸 멋진 공간을 둘러보고 격려도 전할 겸, 아름다운 봄 거리도 즐기며 걷던 출장길.
이런 출장이라면 자주 나오고 싶다는 생각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도착한 사무실은 다소 비좁았다. 정규직 두 명과 계약직 네 명이 함께 쓰는 공간이라고 했다.
책상을 셰어 하거나 간이 책상을 쓰는 방안이 오가던 중, 내 귀에 사수의 말 한마디가 박혔다.
“뭘 고민해? 여기 여기, 여기 계약직 앉히면 되겠네!”
문 바로 앞,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동선 한가운데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비웃음 섞인 투로 말했다.
그 순간,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계약직들은 얼굴이 붉어지거나 헛웃음을 내거나, 정색을 했다.
나중에 정규직이 되었을 때도 나는 그 사건을 잊지 못했다.
내가 겪은 설움을 되갚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스스로 아주 물렁한 사수가 되기로 했다.
때때로 위아래로 치이기도 했지만, 그 편이 더 나았다.
혀에 숨긴 칼로 남을 찌르느니, 멍청해도 당하는 쪽을 택하는 게 더 편했다.
지금은 그런 말로 사람을 짓누르던 이들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렇게라도 존재가 지워지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내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그렇게 안심시켜야 하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말한다고 정답은 아니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그저 조용히 스스로의 인격을 돌아볼 침묵을 건네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그때의 나를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이유도 근거도 없는 말에 상처받던 어린 마음도, 침묵하며 버텨야 했던 날들의 무게도.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쓰라렸는지 인정하면서도,
그 쓴맛 덕분에 얻은 재능에 감사한다.
덕분에 나는 마음을 섬세하게 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쓴맛은 달갑지 않지만, 그것도 결국 ‘맛’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삶의 감각은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