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라고 좀 하지 마 엄마

<쓴맛 2>

by 일월의 제인

"고생해, 끊는다."


‘아후, 정말… 엄마는 왜 맨날 날더러 고생하래…’


엄마가 말버릇처럼 하는 마지막 안부 인사가 왜 그리도 듣기 싫었는지.

지겹게 고생하며 살고 있는 와중에, 고생하라는 인사는 들을 때마다 가슴에 뾰족하게 박혔다. 말꼬리를 잡아 속으로 투덜거릴 만큼 마음이 지쳐 있었던 건,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시기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프리랜서 요가 강사로 여러 요가원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었다. 매일 수업 대여섯 개는 기본이었고, 바쁜 날엔 아홉 개까지 수업을 한 날도 있었다. 요가 강사는 언뜻 보기엔 건강하게 몸을 가꿀 수 있는 직업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건 하루에 슬렁슬렁 수업 두세 개 정도 하는 강사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수업이 많은 날엔 아침보다 연골이 10%쯤 닳은 기분으로 침대 위에 쓰러져 사바사나를 맞았다.


게다가 강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강의들은 대부분 주말에 몰려 있었다. 쉴 틈도 없이 다음 주를 준비해야 했고, 일주일 내내 내게 ‘쉬는 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좀 여유를 부릴 수 있던 시간은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었는데, 오디오북을 듣거나, 엄마와 통화를 하며 짧게나마 삶을 나눴다. 그 시간만큼은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일로 가득한 내 삶에 균형을 되찾는 시간이었다.


나는 엄마를 참 좋아한다.
엄마는 아주 단단하고 따듯한 사람이다. 격한 감정에 휩쓸리는 일도 없고, 상황 탓을 하며 쉽게 흔들리지도 않는다. 일을 하면 반드시 끝을 보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묵묵히 길을 만들어 냈다. 물건 하나, 돈 백 원 하나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고, 본인이 옳다고 여긴 것엔 늘 먼저 몸소 본보기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생을 싫어하는 나 같은 딸을 위해 자신의 젊은 날을 기꺼이 바친 사람이었다.


엄마와의 통화는 그런 엄마와의 짧은 동행이었다.

가까이 살지 못해 자주 못 보는 아쉬움을 해소하고, 내 인생에 처음 겪는 일에 대한 조언을 얻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전화를 끊을 때마다, 엄마는 어김없이 고생하라고 말했다.


유난히 지친 어느 날. 평소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또 고생하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순간, 쌓였던 서러움이 울컥하고 치밀었다.


"엄마! 끊을 때 고생하라고 좀 하지 마!"


툭, 튀어나온 말엔 짜증이 실려 있었고, 나는 말하고 나서 민망해졌다.
엄마도, 나도 잠시 입을 닫았다. 짧은 정적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중이었다.


곧 엄마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우리 딸 고생하지 마. 고생하지 말고 살자. 알았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나를 한번 더 다독이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 끊을게. 잘 자."


그러고 나서 한참 동안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렴, 엄마가 정말 딸더러 고생하라고 했겠는가.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왜 그 말을 그렇게 받아쳐야만 했을까.


그 고생을 지나온 지금에서야 조금 알겠다.


“고생해”라는 말은, 삶의 진창을 묵묵히 걸어본 사람이, 이제 그 길을 나서는 자식에게 건네는 조용한 사랑이었다는 걸. 앞에서 끌지 않고, 뒤에서 지켜보며 스스로 살아낼 힘을 길러주려는 믿음이었음을.


그날 이후로 엄마는 잘 고생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살다 보면 또 그런 말을 듣게 되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면, 그 말의 의미를 잠시 머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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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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