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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n 19. 2023

단지 잘 살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

 돈에 대한 이야기였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였나. 

 대학 진학에 대한 이야기였나. 

 아니면 부러움에 대한 이야기였나. 


 뭐 형의 가정사를 여기다 들추어 볼 건 아니지만 내가 들었던 형의 환경은 확실히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형은 자꾸 내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나도 형을 좋아했다. 우리는 중학생 때부터 성인이 되어 군대를 갔다 온 다음까지도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고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나름 막역하게 지냈음에도

 어느 순간에 나는 형에게 연락하기를 그만두었다. 

 형에게서 자꾸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형을 만난 건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꿈이 있던 나는 중학교 2학년 때에 새로 생긴 밴드부에 들어갔다. 그때 형을 처음 만났다. 밴드부의 리더였으며, 나보다 기타도 잘 치고, 아는 노래들도 많았다. 사람도 매력이 있었다. 제법 씨크한 면모가 있었으며, 거기다 착하기도 하고, 키도 나와 비슷했다. 함께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를 들었고, 더 스트록스와 악틱몽키즈를 내게 알려줬으며, 함께 미래를 고민했다. 형이 빈 강당에서 빨간색 통기타를 뜯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운 모습이다.


 밴드부를 하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밴드부의 이름은 The Thunder였다. 밴드부 담당 강사의 작명이었다. 그때는 마땅한 밴드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그대로 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밴드부원 모두가 무슨 생각으로 밴드 이름을 바꾸려 들지 않았는지가 의문이다. 모두 밴드부에 진심이 아니었던 건가? 더 썬더 보다 구린 밴드 이름이 있을까. 애정이 있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건데. 


 고등학교 시절, 형과 나는 밤 10시가 넘을 즈음에 우리 집 아파트 근처 정자에서 종종 모였다. 형이 빨간색 통기타를 가져오면 형은 형이 아는 노래를 치고, 나는 내가 아는 노래를 치고, 서로 화음을 넣어주며 그 순간에 취했다. 언젠가는 음악으로 성공하리라. 어떤 음악을 할래. 정말 좋은 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 희망 가득 찬, 하지만 건설적이지는 않은 그런 종류의 대화를 많이도 나눴다. 나는 부모님의 공부하라는 말씀을 핑계로, 형은 자신의 금전적, 가정적 여건을 핑계로,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자신을 변호했다.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시절은 충분히 위안이 되었다. 


 약속을 먼저 잡는 성격은 아니라 항상 형이 먼저 연락을 해줬고 나는 흔쾌히 연락에 응했다. 그렇게 같이 시간을 태우는 만남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만남에서 지겨움을 느끼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린 언제나 같은 얘기를 했다.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우리 둘 모두 진척은 없었다. 계속 서로의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푸념에 쏟는 이 적잖은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푸념하기를 어느 순간 멈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없었다. 노력으로 치환되어야 했을 푸념이 그냥 가슴 속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형은 멈추지 않았다. 나보다 더 힘들어 그랬던가. 나는 계속 푸념들이 다 핑계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진 채로 형의 푸념을 들었다. 그리고 그 핑계들은 내게 너무 익숙한 것들이었다. 


 형의 모습이 과연 내 모습과 너무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형이 실제로 노력을 하지 못할 상황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길은 없지만, 나는 분명히 환경 탓을 하며 노력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형은 내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거울 같았다. 나는 그 형과 닮아있었다. 푸념의 언저리에서는 자그마한 꿈같은 게 매달려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위태로운 것이었다. 변명은 우리를 좀먹어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열심히 안 사는데, 나처럼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을 계속 만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그때는 행동반경 밖의 약속을 매주 잡는 것도 부담이었고,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일 자체가 무거운 일이었다. 그냥 귀찮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 형과의 연락을 그만두게 되었다.


 푸념이 가져다주는 이익이랄 것이 위안 이외에 무엇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땅한 이득은 없는 듯하다. 푸념을 늘어놓아 정성 어린 위로를 받아 위안이 되었다 한들, 내가 바뀌지 않는 이상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없다. 불만을 늘어놓고 위로를 바라는, 무익한 일에 시간을 들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싫었다. 


우리는 긍정을 말할 필요가 있다.

부정을 말하는 건 너무 자기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내 개인의 안정을 위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누군가는 문제를 지적해야겠지만,

누군가는 푸념을 하고,

누군가는 부정을 말해야겠지만,

그게 나는 아니라는 거다. 

내 결점을 말하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내 결점을 말하면 상대방은 내 결점과 닮은, 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본인과 닮은 결점을 가진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건 순식간이다. 

왜 싫어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 나 자신의 모습인 경우가 너무 많다. 


그렇게 연락을 끊고 지내다 다시 연락이 와서 몇 번 만나 즐겁게 대화한 적은 있으나 

여전했기에.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렇게 다시 연락을 멈추고 각자의 삶을 산지 벌써 몇 년이 되었다. 


 형이 생각날 때면, 이제와 구차한 변명을 하게 된다. 매번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는 이유란 건, 내심 그것이 죄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잘 모르겠다. 언젠가 서로 만나게 되는 날이 있다면, 우리가 꿈꾸던 그 이상에 가까워진 채로 만날 수 있기를. 그러면 그 아무 말 없었던 이별에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만나면, 그대로 멈춰있을지. 아니면 잘 살고 있을지. 

멈춰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왜일까. 아마 나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가. 

잘 모르겠다. 


단지 잘 살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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