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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n 21. 2023

최소한의 낙관적 바람

 작업실


 왕십리역 근처 대로변의 6층짜리 건물의 지하 2층. 유리문에 있는 잠금장치에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간다. 각자의 음악들이 섞여 흘러나오고 있다. 키를 받고 들어와 배정받은 19호 문을 열어보니 좁지만 넓은 작업실 공간이 보인다. 가로세로 2미터가 조금 넘는, 누워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크기. 이 정도면 노래를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네 면의 벽에서 문이 달린 면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면은 두드리면 먼지가 풀썩 나올 것만 같은 흡음재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은 없지만 층고는 높아 답답한 느낌은 덜하다. 다만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는데, 거미가 보이지는 않아 그대로 두었다. 주인 잃은 거미줄에 무언가 걸린 모습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그 거미줄에 먼지를 제외한 무언가가 걸려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 아마 접착력을 잃었을 것이다.


 공용 화장실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나지만 참을 만하고, 공용 샤워실의 샤워기 홀더는 약간 높은 위치에 있어서, 샤워할 때 물줄기가 가슴팍이 아닌 얼굴로 분사가 되어 조금 불편한 감이 있지만, 내 작업실이 생겼다는 기쁨에 비하면 그 정도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10만 원의 보증금과 월세 25만 원을 내고 ㅊ스튜디오 19호에 입주하게 되었다.


 이케아에서 가장 싼 책상 하나를 가져다 두고 그 위에는 모니터, 스피커, 키보드 등을 올리고 그 아래에는 컴퓨터 본체와 슬리퍼를 뒀다. 역시 이케아에서 산 싸구려 선반에는 악보집과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아두고, 남는 공간에는 마이크 선이나 케이스 등, 잡다한 물건들을 쌓아두었다. 자취방에서 쓰던 의자도 가져다 두고 내가 다룰 줄 아는 유일한 악기인 통기타도 두었다. 가끔 작업실에서 잘 것을 생각해 7만 원짜리 접이식 매트리스를 주문했다. 집에 남는 베개와 담요도 가져왔다. 작업실 생활에 필요한 장비들을 모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호원대에 다니는 친구에게 기타와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음악 이론을 적어서 벽에 붙여두기도 하고, 하루에 5시간 이상의 연습을 목표로 손이 부르트도록 연습도 했다. 그런 불같은 열정은 잠깐이었지만, 어쨌든, 아무리 크게 노래를 틀고, 불러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눈치 보지 않고 음악을 즐길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그것은 불과 일 년 전의 일이었다.


 휴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것도 없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음악은 재밌기만 한 일이 아니었다. 곡의 코드나 기타 연주를 카피하는 것, 음악을 만드는 것, 가사를 쓰고, 어떤 악기를 집어넣어야 하는가, 노래를 부를 때 어떤 방식으로 부르는 게 좋은지. 복잡한 창작의 고민은 점점 즐거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작업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별 목적 없이 작업실로 가서 시간을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자신감은 바닥을 쳤고, 내 행동이 앞으로의 삶에 미칠 파급력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


 받고 있던 기타, 작곡 레슨은 그만두었다. 숙제를 안 하는데 수업은 들어서 무엇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수업을 그만두고 작곡에 전념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일상을 강제하는 최소한의 무언가가 없어져 버린 후, 삶의 패턴은 더 엉망진창이 되었다. 기타나 조금 만지고, 작곡 프로그램이나 조금 만지다가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볼 영상이 다 떨어지면 계속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면서 볼 영상을 찾았다. 그마저도 없으면 뉴스를 봐야 했다. 몇 개월은 그런 시간의 반복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 무기력의 여파가 닿아있는지 모른다.


 앞서 말했다시피 반지하 작업실에는 창문이 없다. 그런 이유로 환기를 위해서는 에어컨의 송풍 기능을 사용해야 한다. 작업실을 쓰면서 계속 송풍 기능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 기능이 내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해 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들어온 이래로 에어컨 필터 세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다가 목이 아프면 먼저 내 창법이나 성대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다음으로는 지하 작업실의 공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네 면의 답답한 회색 벽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노래 부르는 일에 흥미가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는 유튜브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성취라 할 만한 것 하나 없이 일 년을 보냈다.




 비공식 쓰레기장


 눈이 녹고 따듯한 계절이 되면 작업실에 벌레가 꼬이기 시작한다. 더러운 나방파리와 모기가 작업실로 날아든다. 분명 창문도 없어서 벌레들이 들어올 틈 따위는 없지만,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뜨러 나가는 사이에 작업실 문틈 사이로 벌레들이 침입하게 되는 것이다. 작업실은 지하 2층에 있지만 언덕에 세워진 건물이라 밖으로 통하는 뒷문이 하나 있는데, 작업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뒷문 옆에 쓰레기나 다 먹은 배달음식 용기 등을 버리곤 해서 벌레가 더 들끓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위에는 큰 환기용 배관이 하나 있는데 녹슬어 구멍이 뚫린 틈에 비둘기가 둥지를 틀어서, 언제나 뒷문 근처에서는 쓰레기들과 하얀 비둘기 똥들이 자유분방하게 흩뿌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제시한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이론이 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해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되는 것과 같이,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할 경우, 그 무질서가 지역 전체에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누군가 뒷문 옆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려둔 것을 보고, 나도 그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렇게 뒷문 쪽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 보면, 가끔씩 쓰레기들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 비둘기 똥을 치워두기까지 하는 바람에 우리들의 비공식 쓰레기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벽돌색 건물의 깨끗한 벽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그 깨끗한 모습에 잠시 고민하다가도, 스스럼없이 들고 있던 쓰레기를 그곳에 던져버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작업실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 도덕적 해이를 생각하며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이 비공식 쓰레기장의 존재 방식에 나 자신을 투영해보곤 했다. 결국 의미 없는 시간들이 어지럽게 쌓일 뿐이었다. 시간을 버리지 않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내 인생 전반을 구원해줄 무언가를 기대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환상에 기반을 둔 삶은 금방 불행해지기 마련이라, 나는 일 년 만에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내야 했다.


 지금은 음악보다는 글을 쓰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내 고통의 이유를 머릿속으로는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글을 써야만 했다. 내가 받아야 하는 고통의, 그 나름의 이유를 찾아내서 내 눈앞에 제시해야 했다. 그걸 모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머릿속 모든 생각들을 글로 옮겨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의문이나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모두 적기 시작했다. 그 기록에 집중하다 보면 그동안에는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음악은 죽을 때까지 할 생각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음악을 제일 사랑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음악이 더 재밌게 되었다. 작곡을 하다 중간에 놓아버리는 일이 있어도, 글이라는 과제가 있어 전처럼 마냥 슬퍼하고 있지만은 않게 되었다. 진척되지 않는 작업에 매달려 힘을 빼는 일 이외의 합리적인 작업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음악 하나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어지니 여느 때보다 덜 우울한 하루를, 더 노력하는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다만 이런 시간들이 금전적 이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아버지와의 대화


 어느 날 저녁, 주방 식탁에 앉아서 캡슐 커피를 뽑아 먹고 있었다. 디카페인 에스프레소였나. 뒤에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요즘 잘 되고 있느냐고 아버지께서 넌지시 물어보셨다.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 음악에 대한 내 생각과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는 글, 그러니까 에세이를 통해서 어떻게 벌어 먹고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셨다. 막연하게 생각해보면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독립출판을 하고 운이 따라 책을 어느 정도 팔게 되면 그 돈으로 다시 책을 만들 준비를 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내가 책을 낼 정도의 글들을 써 내리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아직 금전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바가 없었다. 독립출판으로 큰돈을 벌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막연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따른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뜬구름을 잡으려는 내 계획을 아버지에게 곧이곧대로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그 정도의 낯짝은 없었던 까닭이다. 아버지께서는 인간 구실이라도 할 수 있을 현실적인 방안을 원하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국문학과의 커리어로써 독립출판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냥 애매한 대학교 간판만 가지고 취업하는 것보다야 대학 간판도 있고 책도 낸 적 있는 사람이 더 취업에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정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강 그런 식으로 아버지 걱정을 덜어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장되는 출판업계에 대한 얘기를 하셨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들이었지만 지겹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말은 분명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젊으셨을 적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사업에 뛰어드셨다.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용품을 개발하시고 1톤 트럭으로 전국을 다니시며 도매상에 물건들을 납품하셨다. 몇십 년 동안 아침에 일어나셔서 오늘 가야 할 거래처 목록과 납품할 물건 개수를 확인하시고, 물건을 실으시고, 운전대를 잡으셨다. 마냥 건강하시고 무서웠던 아버지는 이제 아픈 곳이 많은 어른이 되셨다. 그 반복적인 노동이 얼마나 고된 것일까. 아직까지도 생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은 비생산직 백수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소한의 낙관적 바람


 스물다섯의 나이란 어리다는 핑계를 댈 수 없는 나이이기에, 몸속 어디에선가 무언가 이루어내야 한다는 무언의 요구를 받게 된다. 스물다섯이 되니 주변인들의 부와 능력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극명히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인가 요즘은 돈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작가와 음악가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전업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창작만으로 생활이 가능할 만큼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금전적 보장이랄 것 하나 없지만, 그럼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글과 음악의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생각해보자. 내 생각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누군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돈을 번다니 이만큼 낭만적인 돈벌이가 존재한다는 게 세상에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는 이미 알고 있으나, 나는 그 쉽지 않은 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한다.


 당장에 내가 해야 할 일이란 글을 쓰고 음악을 생각하는 것뿐이다. 다른 경우를 생각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생각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돈을 좇았더라면 진즉에 다른 일을 했을 것이다. 무엇이든 듣고, 쓰다 보면 어느샌가 무언가는 만들어질 거라는 확신이 있다. 그 무언가가 내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일인지, 그냥 만들고 말아버릴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뭔지 모를, 그 무언가를 이제는 정말로 보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겨난 그 무언가를 보고 여태껏 인지하지 못했던 삶의 희망을 얻는 것.


 그것이 내 최소한의 낙관적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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