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일 Aug 02. 2023

외면하는 습관

 1.

 난 누구든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든다. 뭐가 연상돼서 그런 건 아니고, 몸이 그 아픔에 가까운 고통을 따라 하려 드는 건지,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어딘가 아찔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밥을 먹으면서 티비를 보다가 고통받는 흑인 아이가 나오는 유니세프 캠페인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게 된다. 누군가가 아파하는 걸 보는 게 힘이 들어서인지, 저 모습을 보고도 돈을 내지 않는 내가 부끄러워서인지, 밥맛이 떨어져서인지, 그냥 광고라서 채널을 돌리는 건지. 어쩌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에 태어나 어머니가 차려주신 점심밥을 먹으면서 저 아이의 고통을 지켜보고, 저 아이는 아프리카에 태어나 너무도 어린 나이에 영양실조를 앓으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저 가난의 이유는 어디에 있는 걸까. 선진국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한국은 풍작이 들면 농작물을 다시 땅에 묻어버리곤 한다. 운이 좋다는 것에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 걸까. 감히 내가 운이 좋다고 말해도 좋을까. 이유 하나 없이 아이의 살은 썩어가고 있었다. 기부를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해보자면 밥맛이 떨어져 밥을 남기게 된다. 매달 유튜브 프리미엄에 11,500원을 결제하는 나였다.


 2.

 난 누군가 싸우는 모습을 보는 있는 게 힘들다. 금방 눈이 붓고, 피곤해진다. 누군가 싸우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그 싸움에서 누가 옳은지 판단해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해서 말아지는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관찰에서 판단으로 생각이 옮겨간다. 그렇게 싸우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고 누가 더 잘못했는지 판단하는 과정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내가 가진 경향이 편견인지 아닌지의 구분은 이미 스스로 정하기에 모호한 일이라 내가 객관성을 충분히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하는 것 자체에 꽤 많은 힘이 들어간다. 양측 의견에 모두 일리가 있을 경우 특히 그렇다. 이 싸움의 원인이 단순히 악인의 출현에 있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은지, 논점 따위가 어디에 있는지, 사실이 맞는지, 과장이 되어 있는 건 아닌지,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거듭 거치다 보면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 누군가가 잘못이 있긴 했던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게 된다. 어찌저찌 판단을 마치고 나면, 미워해야 할 대상이 눈에 보였다. 그건 내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난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일에 지치고 말았다.


 서로를 미워하는 일에 열중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 행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지만, 그렇다고 결단을 내리는 게 쉬운 일은 또 아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그럴 수도 있지”라는 적당한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세상이라는 복잡계에서 명백한 일이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그런 세상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한다면, 당연히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관된 입장을 정하는 편이 이 머리 아프고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더 간편하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의 기준을 세우는 데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언가에 정의를 내리고 나면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이 화가 나게 된다. 둘은 싸움을 시작하고, 그 둘의 싸움은 반복된다. 이 모든 일에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단순한 감정의 소모전이 유의미한 결과를 일으킬 리 없다. 그건 그냥 명분 좋은 일에 자신을 던지는 쉬운 일일 뿐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 누가 인간 본성의 관성을 막을 수가 있을까. 그런 문제는 해결되어진 역사가 없다.


 3.

 무언가에 아파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나, 두 기준이 서로를 헐뜯는 일을 보는 것이나, 결국 나는 결론을 내리기 힘든 일에 외면하게 된다. 생각에 생각을 무는 일이 즐겁지 않을 때 그 생각은 어느샌가 무거워져 있다. 객관을 노력할수록 더욱 그렇다. 머리가 나쁜 탓일까. 허물의 무게를 비교할 때, 생각의 결론이 무기력을 향할 때, 그러다 아무것도 아닌 나의 존재를 알아챘을 때, 나는 너무 힘들어진다. 그렇게 외면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 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