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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Aug 23. 2023

평양냉면

 언제부턴가 평양냉면이 그렇게 맛있다더라, 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많은 유명인들이 평양냉면 마니아를 자처했고, 반대로 그 맛없는 음식을 왜 억지로 먹느냐는 사람들도 많았다.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느냐 마느냐로 논쟁이 일어나는 것처럼 평양냉면에 겨자나 식초를 넣느냐 마느냐로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많은 힙스터병, 홍대병에 걸린 사람들이 평양냉면에 겨자나 식초를 넣어 먹는 건 평양냉면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라 말하며 억지로 심심한 맛의 차이를 느끼는 양 선민의식을 표출하는 모습과 그 선민의식에 열받은 사람들이 그런 맹물이 뭐가 맛있냐며 반발하는 모습은 평양냉면의 유행에서 관찰할 수 있는 꽤나 유쾌한 현상이었다.


 어쨌든 간에, 슴슴하게 먹든, 양념을 쳐서 먹든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선민의식으로 범벅이 된 사람과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 언제나 이 두 종류의 인간들이 일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평냉의 본토, 북한의 유명 평양랭면집인 옥류관에서는 식초 겨자 모두 뿌려서 먹더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김일성의 개인적인 평냉 취향에 따른, 그만의 레시피가 퍼진 것이라고 하니, 이를 평냉의 왕도로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평양냉면이 유행함에 따라 나 또한 평양냉면의 맛을 궁금해하던 차에 평양냉면 매니아임을 자처하는 한 친구와 함께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 가는 길에 나는 “나는 미식가니까 분명 평양냉면이 맛있게 느껴질 거야.”라는 말을 반복했고, 그 친구는 허허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논현동의 진미평양냉면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만두 하나에 물냉면 두 개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고 기대에 부풀어 냉면 한 입을 입에 넣는 순간에,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행주 삶은 물이라고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잡내를 제거한)


 차가운 물에 약간의 소금과 MSG를 넣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차고 슴슴한 국물의 끄트머리에서 고기의 향미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 맛은 정말로 복잡미묘해서 기존의 “맛”이라는 개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만두 몇 점과 냉면에 올려져 있던 고기에 의존해 면을 먹었지만 결국 다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놓아야만 했다.

그 많고 많은 갈등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맛이라니. 친구는 헛물을 켜던 나를 놀렸고 나 또한 맛있게 먹지 못한 나 자신을 슬퍼했다.


 내 인생 첫 평양냉면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평양냉면에 도전할 생각이다. 한 평양냉면집이 입에 맞지 않았다고 평양냉면 전체를 힙스터의 소비 품목 중 하나로 매도하기에는 진지한 태도로 평양냉면에 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그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환장하는 복잡한 맛이 분명 존재하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모두들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와중에 다양한 취향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가. 최대한 객관적인 척, 많은 취향을 이해하는 일이 행복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아직도 평양냉면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맛있다는 평양냉면집을 알아본다든가, 머릿속으로 평양냉면의 맛을 상상해본다든가. 그렇게 그 복잡함에 당황하지 않고, 그들의 취향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그 미칠듯한 슴슴함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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