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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Aug 26. 2023

평양냉면, 그 두 번째 이야기

 평양냉면을 사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어김없이 까페에서 글을 쓰다 밥때가 되어 거리로 나섰다. 거리를 걷다 보니 전부터 가볍게 벼르고 있던 “색다른면”이라는 가게가 보였다. “색다른면”, 무슨 메뉴가 있는지는 몰라도 특이한 면 요리가 있을 것 같은 이름의 식당이 아닌가. 가게 앞에는 키오스크가 있었고 그 옆 메뉴판에는 여러 가지 메뉴들이 적혀있었는데, 눈에 띄었던 건 토마토 소고기 카레국수와 베이컨으로 싸 먹는 평양냉면이었다.


 알바하는 곳이 카레집이다보니 카레를 좋아하게 되어 카레는 무조건 먹어보는 습관이 있었으나, 베이컨을 싸서 먹는 평양냉면이라니. 이게 뭐지?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었지만 이해하기 힘든 평양냉면도 베이컨에 싸 먹으면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이성은 토마토 소고기 카레국수를 택하라고 말했고, 감성은 베이컨 평양냉면을 택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평양냉면에 길들여지고 싶은 마음, 그리고 한 끼 식사가 만족 없이 허탈하게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 두 가지 마음이 상충하여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10분 정도 고민을 하다, 안전한 선택을 하기로 결심한 나는 토마토 카레 국수를 시키기 위해 키오스크 앞에 섰다. 화면을 보니 토마토 카레 국수가 품절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맛있으면 품절이 되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하고, 이제 내게 남은 선택지는 불만족스러울지도 모를 평양냉면뿐이었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왔다. 전에 봤던 평양냉면의 비주얼과 비슷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수육이 면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 베이컨 여러 장이 그릇 옆에 촥 펼쳐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육수부터 한 숟가락 떠서 먹어봤다. 평양냉면 특유의 깔끔하고 청명한 고기 육수 맛이 났다. 약간은 달랐지만 이건 분명 평양냉면의 향이었다. 그 뭘 삶은 물에서 약간 더 감칠맛이 첨가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바로 베이컨 한 장을 집어 면을 듬뿍 싸서 먹었다. 역시 베이컨과 탄수화물은 잘 어우러졌다. 마치 맛있는 오리엔탈 샐러드처럼, 밥에 베이컨을 싸서 먹는 것처럼 맛있었다. -그런데 이제 더 복합적이고 시원한 풍미를 곁들인.. -그냥 면을 먹어보았는데, 베이컨의 향이 입에 남아있어서 그런가 맛이 있었다. 육수의 감칠맛이 풍부한 것도 물론 한몫했을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는 순간이었다.


 다 먹고 나와서 친구에게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었다는 낭보를 전했다. 베이컨으로 싸 먹는 평양냉면이라는 단서도 물론 포함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베이컨으로 면을 싸 먹는 평양냉면집은 진짜 평양냉면집이 아니라며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었다는 나를 패션 힙스터라고 매도했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진짜 맛있게 먹었는걸. 나도 이 가게의 평양냉면이 정통 평양냉면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을 더 감칠맛 나게 만들어, 보편적인 “맛”의 범주에 올려놓았다는 점이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가게의 평양냉면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내게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통 평양냉면을 추구한다는 말을 내건 가게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색다른면”에서 베이컨 평양냉면을 먹은 지 몇 주가 지나 서울 3대 평양냉면으로 꼽히는 을지면옥에 갔다. 평양냉면을 시켜 맛을 봤는데 되게 먹을 만했다. 깔~끔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맛이 되게 괜찮다고까지 생각을 했다. “색다른면”이 평양냉면에 대한 내 입맛을 어느 정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아직 맛있는 음식이라고는 못하겠다. 배고플 때 생각나는 음식이 아닌, 미식 체험을 하고 싶을 때 생각나는 음식이라고 해야 할까. 기존 음식의 문법과는 어딘가 다른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도 평양냉면의 맛에 어느 정도 익숙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과연 나도 평양냉면에 환장하는, 그런 미친 경지에 오르게 되는 걸까. 그건 모르겠고, 다른 평양냉면집도 어서 가보고 싶다. 다른 평냉집은 무슨 맛이 날까..


 그렇게 평냉투어를 다니다 마지막에는 처음으로 갔던 논현동 진미평양냉면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집이 애초에 내 입맛에 안 맞는 가게였던 건지, 아니면 평양냉면의 진의를 몰라서 그랬던 건지에 대해서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평양냉면에 절여지고 싶은 나, 그리고 쉽지 않은 평양냉면의 테이스트.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김성일의 평양냉면 사가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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