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착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 하나라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지로 좋은 일을 하려고 했다. 내가 착한 일을 하는 모습을 누군가 봐주었으면 했다.
중학교 때에는 방과 후 당번들의 청소를 위해 의자를 책상 위에 뒤집어 올려 두어야 했는데, 일부러 짝꿍 의자를 올려주기도 했다. 내가 버리지 않은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훈훈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나 보다. 누군가 내 선행을 봐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렇게 내 아름다운 모습이 퍼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일은 내가 알기론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해.”라는 매력 없는 발상에서부터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은 번져갔고, 결론적으로는 그 누구도 나를 깊이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개성 없는 그저 착한 아이였으니까. 진심이 없는 아이였으니까.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착한 척을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더라.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진 뒤,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내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운 그 순간, 나는 돌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제 와서 뭘 바꿀 수 있지? 오해를 풀고 싶다는 욕심과 무력감. 그 둘이 부딪히면 언제나 가만히 있기를 택하고, 그러면 없어지지 않을 서운함만이 서로의 마음속에 응어리진다. 그래도 그게 나아. 서로의 기억 속에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잘 모르겠다. 내가 그런 일에 익숙해질 수 있을지, 익숙해져야 하는 건지. 오해는 푼다고 풀리는 게 아니니까. 우연히도 휴학을 하여 사람 자체를 만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고, 그제서야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좁은 인간관계가 행복하기에는 정말 좋다랄까. 여의치 않은 관계에서는 도망치는 게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미워하지도, 미움받지도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그 어떤 일에도 무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