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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Feb 12. 2024

다단계 누나에게 쓰는 편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생겨서 근 1년 만엔가 인스타에 게시글을 남겼다. 지인들의 반응에 며칠 동안 댓글을 달다가 다시 인스타를 방치해두었다. 원래 인스타를 잘 안 하기 때문이었다. 몇 주 뒤에 인스타를 켜서 내 게시글을 확인해보니 이런 댓글이 남겨져 있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 디렉터 김XX입니다!!! 제안 하나 드릴 게 있는데 잠시 DM 가능하세요?” 아니. 다른 여자애들 댓글에서나 보던 협찬 댓글이 나에게도? 말도 안 돼.. 별 기대는 하지 않으며 그 사람의 프로필로 들어갔는데, 그럼 그렇지. 들어가자마자 보였던 건 “Nu skin 뷰티크리에이터&CEO X쌤” 였다. 어차피 회사 밑에서 일하는 거면서 씨이오는 무슨 씨이오. 다른 여자애들한테 달린 댓글들도 이런 것들이었나. 


 X쌤의 프로필에는 자신의 빛나는 비전과 주력 판매 제품이 소개되고 있었다. 


“멋진 30대를 꿈꾸는 남자”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

#뉴XXX #trXX #에이지락XXX

“라이프스타일, 자기관리 X쌤으로 끝내자!!”

“홈뷰티, 탈모, 건강 전문 CEO”


 내가 아는 CEO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그래도 탈모, 건강 전문 CEO인 그는 언뜻 보기에도 앞머리 숱이 가벼워 보였다. 진정한 탈모 전문 CEO라면 제품의 신뢰를 위해서라도 탈모를 극복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탈모 전문 CEO라 칭한 그의 모습이 상당히 아이러니하게 보였다. 


 그의 인스타 스토리에서는 제품들을 사용하고 달라진 자신의 하루하루를 홍보하고 있었고, 게시글들 역시 마찬가지로 열정이 가득한 삶, 비전으로 가득한 삶을 과시하고 있었다. 실체 없는 과시라는 게 너무 티가 난다고나 할까. 이 일을 하는 대부분이 저런 식으로 자신을 과대광고하곤 한다. 회사 덕분에 멋있게 살아가는 척, 자신을 꾸며내어 부러움을 유도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존감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SNS를 하게 되는데, 그와 달리 이들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꾀어내어 회사에 가입시키고 자신 아래에 두는 것을 목적으로 SNS 활동을 한다. 그들 회사에서는 판매자가 곧 소비자이기 때문에 자신 같은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과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이 1인 CEO라며 본인 밥벌이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그들에게 주체성이라는 게 있긴 있나? 학창 시절 받던 성교육보다 더 알맹이가 없는, 세미나라는 이름의 정신교육을 받고, 회사에서 만들어준 물건을 주변인에게 팔고, 정해준 그룹에 속해서 모임을 가지는 식인데, 모든 일이 능동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면 주체성을 운운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돈을 좇지 않는 듯하면서도 오히려 그 어떤 일보다 돈을 보고 들어가는 일이라는 게 정말 열받는 포인트고, 돈을 좇는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다단계 업자들은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 라는 헛된 꿈을 젊은이들과 주부들에게 심어준다. 그것은 호의에서 나온 격려가 아닌, 단순히 본인의 수익 창출을 위한 메시지다. 이 회사에서는 자신이 가입시킨 사람이 판매하여 올린 수익의 일부를 나눠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말만 들으면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올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 뿐이다. 이 가짜 성공 알고리즘에 세뇌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혹세무민하려 든다. “너도 이거 하면 돈 많이 벌고 열심히 살 수 있어! 나 지금 너무 행복해!”라고 말하며 순수하고 착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등쳐먹게 되는 것이고 그제서야 비로소 돈을 벌게 된다. 친구들을 모두 사업 대상으로 봐야 하는 직업이라니. 심각한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인스타 게시물들을 봐도 그들이 평생 친구라고 칭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온통 자기 회사 사람들 뿐이다.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닌 사람을 꾀는 것이 수익 구조인, 결국 화장품이나 칫솔 따위를 매개로 부자가 되는 허황된 꿈을 팔아 사람들 새끼 치는 일에 열중하는 것이 바로 다단계 회사의 본질이다. 새끼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새끼를 치는 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좋은 제품을 판매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남을 속이는 일을 넘어서 자신까지 속이며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차라리 의식적으로 사기를 치는 게 낫다. 수수료를 상위 계층에 떼줘야 하는 유통과정에서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이 나올 리도 없고 애초에 좋은 제품이었다면 다단계의 형식으로 유통할 필요도 없다. 다단계를 하다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회사에도 제출할 수 없는 이력에 시간을 쏟은 꼴이니 그 기회비용이 너무 아깝다. 진급 강요와 포인트 이월 시스템 같은 더 악랄한 수법들도 존재하지만 언급하자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더 이상 시스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하여튼간에 이 회사가 돌아가는 꼴은 사기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그들 집단을 절대 곱게 바라볼 수가 없다. 


 X쌤은 기본적으로 인스타 게시글 얼굴 사진에 필터가 과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얼굴로 판단되는 사회이기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인 것처럼, 잘생긴 편이 물건을 팔기에 당연히 수월하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X쌤의 피부 제품 홍보 게시물들을 살펴보다 보면 필터가 먹여지지 않은 X쌤의 얼굴이 나온다. 필터를 씌우는 것이 피부 마사지 제품의 효능을 광고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X쌤의 피부 제품 홍보 영상에는 그의 얼굴의 형태, 이목구비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잘 사는 척, 잘생긴 척하는 다른 게시글들과의 형태적인 괴리가 느껴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진에 필터를 과하게 넣는 사람이 그리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기 얼굴을 드러내며 행복해 보이게, 자기 삶을 과시하고 싶으면서도 자신이 없어 과한 필터로 자기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드는 게 뭐랄까.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달까. 자연스러운 보정이야 상관없다. 다 만든 카레 위에 바질을 살살 뿌리면 향이 좋아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카레 위에 바질을 통째로 부어버리는 건 누가 봐도 카레를 버리는 짓이다. 그것은 보정, 필터가 아주 심하게 들어가 있는 본인 사진을 올리는 일과 같다. 그게.. 자신의 기만을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라면 내가 알아봤으니 안타깝고, 원본보다 이게 낫기 때문이라면 굳이 과한 왜곡이 티가 나는 사진을 올리면서까지 자존감을 충족시킨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냥 자기만족인데 왜 그런 말을 하냐? 라고 말해도 내가 그냥 그렇게 그들을 보게 된다. 괜한 오지랖일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 그들은 전혀 멋이 없다. 그런 사진을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그렇게 많을까..?



 X쌤을 보다 보니 아는 누나가 생각났다. 대학교 시절 알고 지내던, 그다지 친하지는 않지만, 친분은 있는 그런 누나.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했고 공부도 꽤나 열심히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강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는 누나였다. 착하기도 하고 후배들도 잘 챙겨주는 사람이라서 나는 그 누나가 졸업을 하고 어떤 회사에 들어가게 될지, 어떤 일을 해서 열심히 살아갈지 항상 궁금해했다.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지 못하는 열심히 사는 일을 그 누나는 언제나 해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실상이 어땠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내가 휴학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근황에 관심을 끄고 살아갈 때였다. 어느 날 인스타를 켰는데 게시글 피드에 그 누나가 로션 같은 걸 바르고 요상한 기계를 얼굴에 비비고 있는 게 아닌가. 엥? 협찬인가?? 이 누나 모델 쪽은 아닐 텐데..? 하며 그 누나의 프로필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누나가 다단계를 하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던 터라, 프로필을 보고 충격이 컸다. 대체 왜..? 최근의 글에서는 자기계발 서적의 표지와 희망적인 문구를 하나 올려놓고서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법, 무의식적 사고의 힘에 대해서 함께 공부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다. 자기 딴에는 선의였겠지만 그 저의에는 분명 다단계 회사 가입자 모집의 속셈이 있겠지. 믿을 수가 없었다. 원망스럽기도 하고. 젠장 대체 왜 다단계를 하는 겁니까. 왜. 난 누나를 조금은 존경했을지도 모르는데. 어떠한 경위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지 물어볼 수도 없고, 자신의 회사를 맹신하고 있을 이 누나에게 “이거 다단계 아니에요? 그만해요.” 이렇게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지만 난 이 누나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미치겠는 거다. 


 누나의 직업에 대해 알게 된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지만, 요즘도 종종 누나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이 누나에게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건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연락도 하지 않던 누나에게 다단계에 대한 얘기를 갑자기 꺼낸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인생에 훈수를 두는 게 옳은가 싶기도 하고.. 누나 입장에서는 내가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으로 보일 테니까. 보통 사람들은 자기 말이 맞다고 생각하니까. 심지어는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그 누나가 다단계의 천재라 성공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과연 이 누나가 다단계라는 미친 판에서 어디까지 가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난 누나가 하루빨리 다단계를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씩 잃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많은 회사 사람들 앞에서 어려웠던 가정사를 말하고, 회사를 만나 인생이 달라졌다 주장하고, 꾸며낸 근면을 알리는 그 모든 휘황찬란한 자신의 수고가 다단계 회사 영업의 일환이라는 게 서글프다. 비전에 대해 열변을 토하지 않아도 원래 당신 자체가 근면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걸 왜 모를까.


 처음부터 누나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썼다. 그래서인가 꽤나 감정적인 글이 쓰여진 것 같다. 감히 이래도 되나 싶지만, 내 마음이다. 누나 때문에 다단계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보고 생각도 많이 해본 거니까. 그러니 혹시나 누나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노여워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예전처럼 근황을 묻고 싶은 사람으로 돌아와 주었으면 한다. 누나가 진정으로 원해서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어쩌다 한 번씩 쉬는 날에 만나 서로의 근황이나 떠들면서, 추억팔이나 하면서,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지만. 친하지도 않은 주제에 주제넘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떠든 걸까. 죄송해요.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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