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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Feb 15. 2024

INFP 신드롬

 이제 본인의 MBTI를 아는 것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필수 교양이 되었다. 소개팅을 나가기 전에 상대의 MBTI를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을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이 신뢰하고 흥미로워하는 심리검사라고나 할까. 나도 친구들과 MBTI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얘기하면 할수록 그럴듯한 표본들이 제시되곤 한다. 


 예를 들어 기억력이 좋고 배려심이 강한 친구들은 ISFJ였고, 신념이 강하며 감성을 따지고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친구들은 INFP였으며, 괴짜 인싸는 ENFP,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면서 객관적인 척하는 친구는 ENTP였다. 디테일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대강의 특성들은 대부분 맞아 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바넘 효과라며 MBTI를 매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비슷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을 각각 묶어둔 그 결과는 혈액형 미신과는 애초에 동일선상에 둘 수 없는, 분명 일리가 있는 구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맹신할 정도의 객관적 지표는 또 아니기 때문에 MBTI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분명 그만두는 게 좋다. 흥미 본위의 활용으로써는 꽤나 즐거운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ENXP의 경우 “너 이상해.”라는 말을 “넌 최고야.”로 번역해서 듣는다거나, ISTJ와 ENTP는 환상의 궁합이라든가, INFP가 계속 자기검열을 해서 우울해하는 모습이라든가, ISTP는 가죽자켓을 입는다든가, ESTJ, ENFP, ENTP, ESFP가 모이면 절대 입을 다물지 않는다든가. 요즈음 인터넷에서는 이와 같은 MBTI 관련 밈이 쏟아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성격 유형별 음악 추천 플레이리스트가 생기기도 하는데, 플레이리스트와 그 댓글들을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유형마다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ISFJ 플레이리스트는 기타가 들어간 잔잔감성, 댓글을 보면 “ㅠㅜㅜㅠㅠ 다들 힘내자!” 이렇게 우는 소리들을 많이 한다. 배려하는 성격에 맞게 서로를 위로해주는 모습이 관찰된다. ENTP 플레이리스트는 대개 신나는 음악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댓글을 보면 모두가 서로를 어떻게든 웃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INTJ 플레이리스트는 가사가 잘 안 들리는 검은색(?)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가렛 애프터 섹스 같은 노래들. 댓글을 보면 다들 취향이 까다로워 보인다. “이 플레이리스트가 감히 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고 들어봤더니 노래 좋네요. 인정합니다.” 와 같은 INTJ 특유의 젠체가 있다. INFP 플레이리스트는 백예린과 검정치마를 위시한 몽환적이고 꿈같은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다. 댓글을 보면 집돌이, 집순이들이 많고, 같은 성격 유형의 인간들에 대해서 굉장한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괴로움을 공유함으로 위안과 동질감을 얻는 것 같았다. 인터넷 망령이 가장 많은 유형답게 INFP 플레이리스트의 조회 수는 다른 성격 유형의 플레이리스트에 비해 훨씬 많았다. 


 다양한 MBTI 컨텐츠를 보다 보니 언제부턴가 내 눈에 INFP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고독과 예민한 성격을 사랑하고 있었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감성을 정당화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객관화에 몰두함으로 열등감, 우울감, 자기혐오에 절여져 있어서인가, 많은 작가나 음악가, 영화감독 등의 예술인들이 INFP의 성격 유형을 가지고 있다. 창작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그들이 예술에 뛰어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INFP 인터넷 망령들이다. 저명한 예술가와 본인이 같은 인프피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자신의 우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행위는 흔히 나타나는 일이지만 INFP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실제로 내 INFP 친구는 INFP 문화 아이콘(백예린, 빈지노, 침착맨 등등..)들을 보며 “INFP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딴 얘길 내뱉어 놓고서는 내가 치를 떠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제서야 “너 반응 보려고 이러는 거지~. “라며 본인의 본심을 숨긴다. 적어도 그 농담의 삼십 퍼센트 정도는 본심이리라. 심지어는 히스 레저는 분명 INFP일 거라는 둥 세상을 떠나 확인 불가한 사람의 성격 유형을 정해버리고는 낄낄대는 게 아닌가. 내 참 어이가 없어가지고.. 


 INFP 친구와 INFP의 특징에 대해서 얘길 나누던 중, 우리는 문득 검정치마 조휴일의 MBTI가 궁금해졌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조휴일은 INFP가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구글에 “조휴일 MBTI”를 쳐보았지만 명확하게 그의 성격 유형을 알려주는 글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그가 정말 apex 인프피라면 본인의 성격 유형을 밝히지 않았을 터였다. 왜냐하면 INFP는 INFP들의 유난을 스스로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발견한 게시물 하나, “INFP 갤러리”에 올라온 “검정치마 조휴일 아는 사람?”이라는 글이었고 클릭을 하니 본문에는 “빼박 infp 맞지?”라고 적혀있었다. “검정치마 갤러리”를 뒤져보니 “조휴일 mbti 궁금하다” 라는 제목에 “뭔지 추정좀 해 주실분 infp같은데” 라는 글이 쓰여있었다. 댓글에는 다들 infp 아니냐는 댓글이 달려 있었는데, 그중에서 인프피의 성격을 관통하는 댓글이 두 개나 달려 있었다. “infp엿음 좋겟다 내가 infp거든 ㅎ”, “나도infp인데 완전 반갑다 조홀리데이님과 같은 엠비티아이라니..흐흐” 이 두 댓글을 보고 친구와 나는 머리를 싸매고 한참을 웃었다. 자신이 선망하는 인물과 같은 성격 유형이기를 소망하는 모습과 그 소망을 담은 추측을 본인 좋을 대로 사실인 양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모습이 엄청난 코메디라고 생각했다. 이 현상을 우리는 INFP 신드롬이라 부르기로 했다. 


 물론 우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위는 누구나 해보는 일이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결국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잃게 된다. 억지 동일시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만들어 본인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고, 결국에는 다시 동일시할 우상을 찾아내어 자위하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당신과 그 우상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존재인지 애초에 직시를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이다. 


 인프피들이 왜 이렇게 동일시를 많이 하나 생각해보면, 너무 외로워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너무 외로워 같이 있는 느낌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리라. INFP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 유형이니까. 일반화일지도 모르지만, 나와 다른 방식으로 괴로워하는 이의 심리를 짐작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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