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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Feb 20. 2024

까페 고르기

 나는 왕십리 한양대 병원에서 태어나, 25살이 된 지금까지 뚝섬역 근처에서 살아왔다. 어릴 적 이곳의 기억은 서울숲의 전신인 뚝섬 가족공원의 노란 흙바닥에서 할머니께서 날 데리고 걸으시던 일, 초등학교 가는 길에 있던 공장 앞을 지나갈 때 쇠가 갈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고무 탄 냄새, 쇠 가는 시큼한 냄새에 귀를 막고 숨을 참았던 일로 기억된다. 강산이 대충 변할 동안 뚝섬 경마장은 뚝섬 가족공원으로, 또 뚝섬 가족공원은 서울숲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 주위에 많고 많았던 공장들은 어느새 까페로 바뀌게 되었다. 


 어느 날, 정미소였던, 그리고 공장 부자재를 보관하는 창고였던 대림창고가 복합문화공간이 되면서 성수동은 조금씩 달라졌다. 서서히 까페들이 생기더니, 회사 사무실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고, 회사가 많으니 밥집도 많이 생겼다. 성수동은 별 특징 없는 공장지대에서 새로운 힙스터들의 성지가 되어갔다. 18년 군대를 전역하고 집에 돌아오니 집 주변에 까페가 많아져서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괜찮은 까페들을 구경하곤 했다. 휴학을 하고 나서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까페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사실 갈 곳이라고는 까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배부른 고민이 시작됐다. 까페를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오히려 까페 선택이 어려워지더라는 것이다. 점점 다니던 까페들에 조금씩 아쉬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디 갈지 계속 고민하면서 동네를 한 시간도 넘게 돌아다닌 적도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대체 어떤 까페를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좋은 까페란 어떤 까페를 말하는 걸까? 막연히 생각해보았을 때 바로 좋은 까페의 정의가 생각나지는 않았다. 까페마다의 특장점은 정말 다양한 지점에 있기 때문이었다. 넓다든가 감각적이라든가, 그런 막연한 생각이 일차적으로 생각이 났는데 그렇다고 해서 넓고 감각적인 공간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또 아니더라는 것이다. 좋은 느낌에는 어딘가 막연한 느낌이 있다. 반대로 아쉬움을 느낄 때에는 이유가 명확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까페에 갔을 때 아쉬움을 느끼는 지점들을 나열해보기로 했다. 




아쉬운 점들


1. 컨셉이 없을 경우 


 성수 tmh는 오디오회사의 쇼룸을 겸한 만큼, 나온 지 60년도 더 됐음에도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을 보여주는 멋진 스피커와 작은 클래식 티비, 그리고 자사 스피커들을 전시해두었다. 1층, 2층, 3층 모든 공간이 다른 목적으로 설계 되어있음에도 그 다른 목적의 공간들이 비슷한 느낌으로 잘 어우러지는 것을 보자면 공간 설계자의 탁월한 실력에 감탄하게 된다. (지금은 사라졌다.)


 성수 할아버지 공장은 아주 큰 까페인데, 녹슨 문, 아주 높은 층고와 아주 넓은 내부, 빈티지한 인테리어에 잘 어울리는 식물들, 큰 창문으로 얻은 근사한 채광, 1층 중앙에 위치한 야외 공간이 큰 매력을 지닌다. 


 앞서 얘기한 두 까페의 경우, 까페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TMH는 오디오룸, 할아버지공장은 넓은 공장형 빈티지 까페. 그에 비해 까페가 가진 색깔이 애매한 경우가 있다. 빈티지를 표방하는지, 갤러리를 표방하는지, 노출 콘크리트를 잘 활용하는지, 60년대 후반 미국의 오피스 느낌인지, 미니멀인지, 어떤 컨셉을 잡은 건지 알지 못할 까페들이 있다. 그런 까페의 경우, 나는 방문의사가 생기질 않더라는 거다.



2. 오브제나 가구의 퀄리티가 떨어질 경우 


 까페는 공간, 채광, 가구, 오브제, 식기와 같이 고객들이 소유하고 싶을 법한 것들을 마련한 뒤에 진행하는 단기 임대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가지고 싶은, 보고 싶은 물건, 공간이 없다면 굳이 까페로 칠린하러 갈 필요가 있을까. 요새 질색하는 의자가 있는데, 철로 된 파스텔톤 분홍색, 노란색, 파란색의 차가운 야외용 의자가 그렇다. 넓은 까페, 야외 공간이 있는 까페에서 그 의자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난 그 의자가 너무 싫다. 차갑고 흔들리는 건 기본이요 딱딱하기까지 하고 미관상 매력적이지도 않다. 비용 절감의 목적으로 인스타 감성의 적당한 의자를 골라 샀으리라는 걸 생각하면, 너무 대충 인테리어를 선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이케아 가구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까페도 그렇다. 지루하다는 말이다. 


 반면, 어떻게 이 물건을 이렇게 만들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이렇게 짜임새가 훌륭할까? 디테일 미쳤는데?!!! 하고 감탄하는 때도 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 물건이 어떤 브랜드이고 어떤 의도를 포함한 브랜드인지 궁금해질 때도 있다. 그런 물건들은 내 지적 허영심과 소유욕을 마구 자극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너무 비싸서 살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까페에 가기 전에는 몰랐던 공간과 오브제에 대한 지식을, 몰랐던 힙을 까페 주인장이 제시해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얼마 전 마주한 따듯한 라떼가 담겨있던 킨토 머그컵처럼. 



3. 자리가 불편할 경우 


 간혹가다 좁은 곳에 2인석 테이블 네다섯 개가 전부인 까페가 있다. 그런 까페는 미니멀해보이려고 하는데 별로 안 미니멀해보이고, 힙해보이려고 하는데 힙해보이지 않는, 불편하게 등받이가 없는 흰색/검은색, 원통 모양/푸딩 모양 의자나 나왕 합판 의자를 두곤 한다. 그런 까페를 보면 너무 불편해 보여서 갈 생각이 들지가 않는다. 그냥 앉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특히 나는 까페에 가면 오래 앉아있는 편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편한 의자의 유무를 중요하게 여긴다. 잠시 있더라도 편한 의자가 더 좋지 않겠나. 



4. 너무 좁아 오래 있기가 눈치보일 경우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까페에 오래 있는 성격인데, 안 그래도 자리가 좁은 까페에 나 하나 때문에 손님을 못 받는 상황을 만드는 게 너무 불편하다. (이런 경우에는 절대 주말에 방문할 수가 없다) 단, 좁아도 좁은 크기와 잘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하거나,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에스프레소 바처럼 좁은 것이 오히려 좋을 경우는 제외. 



5. 음료나 빵이 맛이 없을 경우 


 결국 까페의 명분은 커피나 간식을 먹으러 가는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맛있는 커피, 음료, 간식만이 까페의 화룡점정을 찍을 수 있다. 다 좋은데 맛이 없으면 그만큼 아쉬운 게 없다. 



6. 너무 시끄러울 경우 


 할아버지공장의 경우, 주말이 되면 까페 크기도 크고 소리도 울리고 자리도 많고 사람도 많아 시끄러운 탓에 영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다. 웅성웅성이 무슨 느낌인지 알고 싶어지면 주말에 할아버지 공장으로 가면 된다. 까페가 좋아서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는 게, 오히려 까페를 즐기기에 불편한 요소가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이 없는 이상 선택하기 힘든 까페가 되어버리고, 노캔 이어폰이 있다고 해도 사람이 너무 많으면 그 자체로 또 불편하다. 사람들이 몰리는 주말에는 까페에서 여유를 찾기가 어렵다. 반면 평일 낮의 까페는 조용하니 나 혼자 전세 낸 느낌으로 있기 좋다. 




 앞에서 나열한 여섯 가지 아쉬운 점들이 느껴지지 않는 까페를 가게 되면, 아주 작은 역할의 엑스트라 배우들마저 호연을 선보이는, 좋은 영화를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감동이 느껴진다. 까페의 분위기, 설계자의 의도에 오롯이 젖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까페가 좋다. 


 아쉬운 점들을 미루어보아, 내가 가고 싶은 까페란 확실한 컨셉을 가지고, 그 컨셉에 동의할 만한 디테일을 가진, 소유욕과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좋은 가구나 오브제를 두고, 편하게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 상황과 의자가 있고, 음료과 간식이 야무지며, 시끄럽지 않은, 그런 까페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말한 항목들을 모조리 지키는 까페라고 해서 좋아하는 까페가 되는 건 또 아닐 것이다. “너는 내 말 잘 들어줘서 좋아.“ ”너는 일을 열심히 해서 좋아.” “너는 착해서 좋아.“ “넌 게임을 안 해서 좋아.” 처럼 사람 좋은 데 이유를 댈 수는 있겠지만 그게 그 사람이 좋은 이유의 전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까페도 간단하게 풀어낼 수 없는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좋은 데 이유 없다는 말처럼 까페 좋은 데에도 명확한 이유 같은 건 없는 게 아닐까.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처럼 모두가 저마다의 매력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을 뿐인 거니까. 별 이유 없이 정이 가는 까페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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