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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Mar 26. 2024

초봄에 든 생각.

어디로든 발을 옮기고 싶었다.

아마 눈부실 뿐인 햇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른 풀이 더 메말라도 이젠 더 이상 시들지 않겠지.


거리의 사람들을 구태여 반목하던 겨울엔 사실 나를 죽이고 싶었다. 

대신 차가운 추상 위에 덜렁이던 낡은 헝겊을 떼어냈다. 

남은 흔적이 흉하다고 생각했다. 


자주 먹던 카레집도, 자주 가던 카페도 변하고 사라지고. 

그런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무뎌지고 있다. 

나쁘지 않다. 정말 괜찮다. 이젠. 

전부 사라진 것도 아니고. 


비록 변했지만, 그대로인 것도 많다.

다시 페인트칠을 했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을 띄는 우리 집.

봄마다 감탄하는 집 앞 하얀 목련과 아파트 단지 밖 담배 피기 좋은 정자. 

익숙한 것들이 더 생생해지면 지난 몇 개월 동안의 섭섭함을 잊어버릴까. 


그토록 좋아하던 가지절임은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등심의 수준도, 카레의 깊이도 확연히 차이가 나지만 

오늘 저녁으론 토마토 카레와 

너의 흔적, 슬픈 마음으로 너의 흔적을 먹자. 

언젠가는 상실마저 익숙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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