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에 콘돔과 판초우의의 유사성, 돌기형 콘돔의 비밀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비록 작은 무대였고 반응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난 그것을 유튜브에 올렸고, 어쩌다 형 여자친구분이 그걸 보시게 됐다. 형 여자친구분은 나를 문학소년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영상 덕분에 환상이 아주 깨져버렸다는 말을 형을 통해 듣게 되었다.
난 형에게 오히려 환상이 깨지길 바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영상을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달라 했다. 환상이 깨지셨다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양가적이고 싶으니까. 그분은 이제 날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야한 얘기를 하는 호색한으로? 고뇌하는 문학소년으로? 아니면 순수한 문학소년인 척하는 호색한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노렸다고 말은 했지만 단순히 환상이 깨지길 바란 건 아니었다. 사실 내가 바라고 있었던 건, 환상과 공존하는 의외성 같은 것이였다.
난 누군가 나를 쉽게 범주화하기를 원치 않는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아마 그런 사람일 테다. 이렇게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의 글을 여기까지 읽고 있는 사람은 분명 일반적이지 않다. 일반적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아니면 제 지인이시겠죠. 안녕하세요.
말이 샜는데, 다시 말하자면 난 누군가 나를 분류대 위에 두기를 원치 않는다. 분류가 시작되면 그 대상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그렇게 재단된 무언가는 결국 만만해진다. 쉽게 다룰 수 있게 된다. 판단을 보류시킬 복잡성이 없다면 결국 타인으로부터 속단을 당하고, 평가 당한 이미지대로 취급을 받게 된다. 내가 느끼는 장범준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그렇다. “장범준은 자기복제를 너무 많이 해”, “장범준은 ‘허~’ 원툴 아냐?ㅋㅋ” 뭐 전혀 없는 얘기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수많은 지적들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자신의 취향이 더 복잡하고 뛰어남을 밝히기 위해 비교적 복잡성이 덜한 유명인의 성취를 격하할 뿐이 아닌가 싶다.
거기에 더해 사람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타인에게 비쳐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낀다.) 내 눈엔 내 흠이 더 잘 보이는 법이고, 자기혐오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타인이 정의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건 자신을 향한 타인의 취급 여하에 대한 공포임과 동시에,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들키는 것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타인의 시선과, 자기혐오의 지점이 일치함을 느낄 때 드는 공포가, 자신을 규정짓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만든다는 것이다. “나다운 게 뭔데!”라는 대사가 클리셰가 된 원인이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반면에 사람들은 규정 당하길 싫어하면서도, 남들을 규정하고 싶어한다. 분류된 타인은 알기 쉽고, 두려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름의 기준으로 평가가 끝난 타인은 내 손아귀에 있다. 분류한 대로, 그 기준대로 그를 대하면 되는 편한 일. 분류는 이를 위한 사전작업인 셈이다. 이를테면 특정 mbti를 멀리한다거나, 남자면 기호 몇번을 찍었을 거라거나, 여대생이면 특정 사상을 가졌을 거라 생각한다거나,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여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거나, 특정 지역을 혐오한다거나, 문신을 하면 사회적인 시선을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거나. 이런 식의 ‘세상 쉽게 보기’ 유행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세상이 다면화 되는 만큼 다면화 된 편견이 늘어나니, 고전적인 갈등이 조용해지는 만큼, 새로운 갈등이 늘어나고 있다. 그게 틀렸다는 건 물론 아니다. 사조에 무슨 잘못이 있을까. 단지 그냥 피곤하다고 해야 할까. 모두 미움받고 싶진 않을 텐데.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오롯이 행하고 나서야 내가 편해지는 이 세태가 불편할 뿐이다.
나는 경박하고도 진중한 사람이고 싶다. 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문학소년이자 더러운 소리를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 그렇게 보이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렇게 되고 싶은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저 내 글과 농담을 많은 이들이 즐겁게 봐줬으면 좋겠다. 더러운 소릴 해도, 착한 소릴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줬음 한다. 이기적이지 않냐고? 내가 말로 해서 그렇지 다들 그런 마음이지 않나. 나부터 모두를 그렇게 보려고 노력할테니, 여러분들도 부디 그래주셨으면 좋겠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든, 뭐든 상관없으니 나를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일이 더 사랑받기 위한 게 아니겠는가. 영화 ‘비포선라이즈’에서 셀린이 제시에게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