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인간.

과거에 쓴 우울한 글에 대한 단상

by 김성일

대단해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쉽지 않다.

나는 쓸모가 딱히 없는 인간이니까.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효용을 발견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거기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인간이라면 대체적으로 쓸모가 없어진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진짜 쓸모가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지 2년 정도가 지났다.

나는 이 글을 참 좋아하지만 어디에 내보일 수는 없었다.

내가 내 자신을 병신으로 보는 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물론 내가 병신이라는 걸 돌려서 자주 말하곤 했다.

그것은 내 지난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였고, 개인적인 성찰에서 도출된 진지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저 글을 내보이기 힘들었던 건, 너무나도 내 속내와 가깝기 때문이었다.

모든 글에 솔직하려 노력하지만 모든 걸 보여줄 순 없는 노릇이다.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거짓말만은 하지 않으려 한다.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누구나가 그렇듯이.

말이 잠깐 샜다.


이제는 내가 쓸모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간을 쓰며 겪은 모든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 친구들과 게임을 하며 알게 된 마인크래프트 지식,

[고대 잔해를 이용해 네더라이트 주괴를 만들어 최강의 갑옷을 얻을 수 있다]

와 같은 정보도 내 소중한 지식이자 경험이 된다.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물론 당신이 웃으면 좋긴 하겠지만.



내 자신을 쓸모없다 여겼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쓸모가 없다고 여긴 나는 정말로 쓸모가 없었다.

생각은 삶의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쓸모없는 삶을 살아갔다.

그런 상황에서 날 구원해 준 건, 흔한 얘기지만 결국 사람이었다.


백수인 나를 내팽개치지 않고 언제나 방을 내어주시며 공짜밥을 해주시는 부모님.

실없는 소리는 너가 최고라며 배가 찢어져라 웃어준 친구들.

오래 몸담았던 평창더위사냥축제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일거리를 맡겨주신 최대표님.

너는 분명 뭐라도 될 거라고 진심을 담아 말해주는 형님들과 누님들.

이외에도 나에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준 모든 사람들.

그 모든 교류의 과정이 내 생각을 점차 변화시켰다.

좋은 일만 있었다면 믿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주관이 일으켰던 크고 작은 사고와 상처들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껏 살아오며 접한 모든 것들이 내게 양분이 되어준다.

생각을 이루는 건 지식과 경험이고,

난 강박적으로 썩 많은 지식과 경험을 얻기 위해 발버둥 쳤다.

불안이 가져온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난 큰 숲을 기대하게 되었지만,

결과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도달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젠 알기에.

숲이 있고 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있어야 숲이 있다는 것을 이젠 알기에.

그리고 씨앗을 뿌릴 내 땅을 사랑하고 있기에.

난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는다. 지치지 않도록, 꾸준하게.


이제 저 우울한 글도 이젠 쓸모 있게 되었다.

신기할 따름이다.












*쓸모 있는 상식 하나*

'쓸모없다'는 상황을 나타내는 일종의 관용어로서 자주 쓰여 한 단어로 굳어졌기 때문에 '쓸모'와 '없다'를 붙여 쓰지만 '쓸모 있다'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띄어쓴다고 합니다.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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