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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Apr 30. 2024

인생영화.

해당 질문의 순수성에 대하여.

누군가 내게 “너 인생영화가 뭐야?”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난처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겐 인생영화랄 게 딱히 없기 때문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한 작품을 보는 걸 약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그리 자주 보진 않는다.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그렇게 가끔 영화를 볼 결심을 하면 보통 명작, 수작이라고 평해지는 작품들만 본다. 그런 식으로 검증된 작품들만 보다 보면 좋지 않은 영화가 없다. 그래서 왓챠피디아 점수도 후한 편이다. 다 비슷비슷하게 엄청 좋은데, 어떻게 그중에서 인생영화를 고를 수 있을까. 그 어떤 단서도 없이 최고를 꼽으라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보다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적 꿈이 가수였어서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언가를 하면서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지금도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으니, 영상을 본다거나 사람이 앞에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나는 언제나 음악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나에게도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야?” 라는 질문은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정말 굳이굳이 말해보자면 비틀즈, 오아시스, 블러, 파슬스, 카시오페아, 윤석철, 공중도둑, 스트록스, 롤러코스터, 화요비, 장기하와 얼굴들, 언니네이발관, 마이앤트메리, 이상은, 백예린, 권진아, 이진아, 브라운 아이드 소울, 나얼, 파라솔, 페퍼톤스, 토이, 빈지노, 김동률, 박재정, 레드 핫 칠리 페퍼스, 키린지, 나카시마 미카, 서태지, 새소년, 실리카겔,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향니, 존 메이어, 브로콜리너마저, 윤종신, 윤상, 라디오헤드, 이소라, 우효, 마츠시타 마코토, 조원선, 다프트 펑크, 잔나비, 자미로콰이, 김수영, 나잠 수, 바우터 하멜.. 정도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가수만을 꼽을 수는 없다. 모두 분기마다의 내 일상을 채워주던 가수분들이니까. 지금 서태지 음악을 주로 듣는다고 해서 언니네이발관보다 서태지가 더 좋은 건 아니지 않나. 단지 요즘은 서태지 음악을 더 듣고 싶을 뿐인 거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 나와 주파수가 가장 잘 맞는 단 하나의 영화, 가수를 공표하는 일이, 나라는 인간의 온도, 색, 주파수를 규정해버리지는 않을까 싶다. 또 어떤 작품을 내 인생영화라 말하게 되었을 때 누군가는 나를 좀 별로인 취향을 가진 인간으로 보진 않을까 싶기도 하고, 또 인생영화, 인생가수를 떠올리고 말하는 그 과정이 남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써 작용하는 것에 대한 경계도 있다. 

“너무 자의식 과잉 아니야?”

“사람들은 너한테 관심이 없어” 

라고 하실 수도 있을텐데 내가 그런 괜한 걱정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남을 볼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의 인생영화, 취향을 보고, 그 사람의 온도, 색, 주파수를 함부로 판단하곤 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거나 유니크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인생영화나 인생가수를 쉬이 입에 올리는 사람을 보면 몰취향이라는 생각도 들고, 혹은 보여지기 위한 취향을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분명 좋은 사고방식은 아니지만.. 나만 그런가? 다들 그정도는 추하지 않은가? 


나는 본인이 본인의 인생영화, 인생음악, 인생가수를 정하는 일이 다분히 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인생영화 같은 걸 정하고, 또 드러내는 행위가 자신의 취향, 방향성의 우월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거다. 자신이 어떤 이념, 신념을 가졌음을 자랑스러워하고, 그 생각을 전파하려고 하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사람처럼, 하나의 작품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아, 본인이 그 영화가 가지고 있는 메세지나 철학을 옹호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달까. 특히 인생영화를 묻는 질문은 그 질문자 스스로의 인생영화를 밝히며 끝난다는 점에서 나는 그에 대한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영화를 정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인생영화를 정하는 모두가 그러한 의도를 가졌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생 최고의 영화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정해질 일인가 싶다. (그들이 쉽게 정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쩌면 인생영화, 인생가수를 가지지 못한 내가, 주관이 뚜렷하지 못한 내가,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에게 가지는 열등감,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직 인생영화를 접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정하지 못한 걸까. 나에게도 오래도록 함께 할 인생영화가 생길까, 아니면 지금처럼 그냥 좋아하는 것들을 그때 그때 바꾸며 살아가게 될까. 뭐가 어떻게 되든, 진실로 인생영화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한번쯤은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여담) 이 주제를 짤막하게 메모장에 적고 1년 여가 지났을까. 자주 보는 유튜브 컨텐츠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인생영화 질문에 대한 영상이 올라왔고, 왜인지 나는 이 주제를 뺏긴 기분이 들었다. ‘내가 먼저 생각해냈다고 이 토픽..” 그래서 이 글을 올리게 됐다. 단지 내가 먼저 생각해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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