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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n 16. 2023

에세이를 써서 돈을 버는 사람

 내가 글에 재미를 붙이게 된 계기라고 한다면 아마 고등학교에서의 작문 시간, 국문과 수업, 군대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썼던 일기 정도가 있을까. 난 언제나 음악인으로 성공하는 상상을 했고 나중에 음악으로 성공한 다음, 틈틈이 써뒀던 글들로 책을 내서 손쉽게 부가 수입을 얻는, 날로 먹는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그런 미래는 내가 성공해 마지않을 것이라는 과거의 망상에 불과했고 아직 오지 않은, 이대로는 오지 않을 미래였다. 


 지금의 내가 성공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참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음악을 미적미적하고 있었다. 그냥 하던 대로 밍기적밍기적. 가라앉지 않고 떠올라 있을 정도로만. 그러다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글 과제가 있을 때면 언제나 몰입해서 쓰고는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곤 했다. 글쓰기 수업에서는 A+나 A를 놓치지 않았다. 걸레짝이 된 학점에서 챙겼던 나의 작은 자존심이었다. 


 2021년이 되고 나는 스물다섯이 됐다. 군대를 다녀오고, 2학년 과정을 마치고 1년 반 휴학을 했다. 음악을 한다는 명목이었다. 별 소득은 없었다. 사회적인 동물, 인간 김성일이 가진 사회적 성취라고는 가천대 입학뿐이고 토익이나 대외활동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자격증도 운전면허증밖에 없다) 별것도 없이 스물다섯이 된 나는 지금 내 나이가 불안하다. 주변을 보면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거나 이미 취업한 사람도 있고, 이미 능력을 인정받고 잘 나가거나 아직 이룬 것 없이 방구석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돈이 없다. 어떤 사람이라고 특정되어질 수 있는 집단에 소속되고 싶고, 친구들과 만나면 벌써 주식, 코인 얘기가 나오는 게 씁쓸하고,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의심이 들고, 사람 구실이라는 게 전적으로 돈에서 나오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돈이라는 개념이 눈앞에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결국 성취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 둘의 모습이 눈에 띄게 되는 나이가 스물다섯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나이에, 내가 하고 싶다던 일마저 열심히 하지 않는 나의 심리가 정말 개같다. 현상 유지에 힘쓰는 나를 바라보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글을 쓸 때 느끼는 감정과 음악을 하다가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면서도 작은 차이가 있는데, 음악은 만들다 보면 내 결과물이 좋게 들리다가도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들었을 때 느껴지는 벽이 상당하다. 그에 비해 글은 덜 허탈해진다고 해야 할까. 글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고 더 많이 듣기 때문인 걸까. 음악에서 비교 우위를 따질 대상을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글을 쓰는 게 음악을 만드는 것보다 쉽다. (음악을 그만두진 않았다)


 글을 쓰는 것도 이게 참 오묘한 게,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일이라 계속하다 보면 뿌듯하다가도 불안해지는, 복잡한 감정이 나를 감싸기 때문이다. 과연 독자나 다른 출판사가 내 글을 보고 매력을 느끼게 될까? 내 마음과 생각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내 주변인들에게 전달이 될까?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글을 써서 기어이 책으로 만들어 낸 뒤, 그걸 팔아서 수익을 내는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특히 에세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소설이나 시 같은 경우에는 작가가 임의의 공간을 만들어내어 작품 자체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작가가 어떤 사람이건 작품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인식으로 에세이 작가보다 소설가나 시인을 더 예술적인 인간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이에 있다. 그에 비해 에세이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글을 통해 이야기하면서 그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사람이다. 본인의 삶과 경험이 보다 직접적으로 글에 투영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작가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지가 주요한 세일즈 포인트가 된다. 그래서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이 에세이를 쓰면 잘 팔리게 된다.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책을 팔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인간 김성일은 어떻게 책을 팔리게 할 수 있을까. 


 “마음에도 파쓰를 붙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의 저자 김봉철은 자신을 인간쓰레기라고 지칭하는 사람인데, 불행한 인생과 끝없는 자기혐오, 인간 본성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한 글을 쓴다. 그런 글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김봉철 작가의 대단한 점은 자신이 겪은 부조리를 얘기하면서도 예리한 소회를 통해 독자들의 막연한 동정을 작가의 인간이론에 대한 사색으로 바꾸어 버리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작가에 대한 동정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그 기구한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병철 작가의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의 삶 역시 너무나 강력한 소재였다는 것이다. (힘들었던 삶을 소재 따위로 말하는 게 죄송스럽지만, 이 표현 외의 다른 표현이 생각나질 않는다. 죄송합니다.) 


 나는 애매한 사람. 드높은 성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 불행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 중에서도 특별하길 바라서 조금 더 불행한, 결국 평범한 사람. 비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작가들의 책들을 보면 나는 회색분자가 된다. 그래서 더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 의심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려고 하는 건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음악과는 또 다른, 나른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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