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간 학교에서 처음 반장이라는 감투를 썼던 중학교의 어느 날 나에겐 고등학생 형들까지 포함된 전교 간부회의에 대의원으로 참석하라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되었다.
아직 꼬마 티를 벗지 못한 내가 어른처럼 보이는 형들 그리고 선생님을 모시고 학교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건 그 전엔 느껴보지 못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길지 않은 학교생활 동안 느껴왔던 작디작은 문제들까지도 되짚어가며 정리하고 학급의 회의를 열어 친구들의 생각들도 최대한 논리적인 원고로 만들어 나갔다.
학생회의 오래된 학칙들도 학내의 부족한 편의시설들도 학교의 교육목표까지도 내 머릿속을 채우는 발표의 소재가 되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선생님의 인사와 간단한 의례들이 지나가고 안건 토론의 시간이 되었을 때 나의 준비된 발언들은 쉴 새 없이 서기의 기록지를 채워갔다.
회의가 빠르게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몇몇과 참석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대다수의 태도와 대비되어 계속되는 나의 발언권 요청은 조금은 민망해 보이기도 했지만 좋은 의견이라는 의장의 추임새와 꼭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지도 선생님의 말씀들로 인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늘은 시간 관계상..."이라는 의사진행 발언이 나오고 나서야 회의는 종료되었고 끝내 다 풀어내지 못한 나의 준비들이 아쉽기는 했지만 책임을 다했다고 자부하기엔 충분하다는 자기 위로를 하며 나의 첫 간부회의를 마쳤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나의 감각들은 온통 내 의견들로 인해 변화될 학교의 규칙들과 구조들에 집중되었다.
등교를 할 때도 하교를 할 때도 선생님의 조회나 종례 말씀이 있을 때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변화나 그와 관련한 언급들이 있지는 않을까를 살폈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도 몸으로 체감할 만큼의 움직임은 없었지만 학교라는 큰 조직이 변하는 것은 그리 빠르게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 회의에서도 같은 태도로 의견들을 쏟아냈다.
세 번째 네 번째 회의가 지나가고 나의 대의원 임기가 끝날 때가 되어도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학교를 보며 난 안건으로 채택된 사안들에 대해서는 진척사항을 다음회의 때 알려줄 것을 건의했다.
그런 식의 회의가 몇 번 더 이어지고 학년이 마무리될 때까지도 변하지 않는 학교의 구석구석을 바라보다가 난 용기를 내어 학생부 선생님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주임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선생님들이 다 알아서 하고 있으니 어린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간단히 말씀을 하셨다.
억울한 마음에 몇 마디 더 꺼내려는 나에겐 바쁘시다면서 벌칙까지 운운하셨다.
한 해가 지나고 다음 해에도 난 반장이 되었지만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주변의 문제를 찾아내고 그것을 대표로서 발언하고 바뀌기를 바란다는 건 순진하고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라는 곳에서 학생들의 생각들은 그저 모의토론에서 주고받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갔다.
수업이 끝나고 책상 정리를 하고 바닥청소를 하고 있는데 지나던 교장선생님께서 기특하다며 이름이 뭔지 물어보셨다.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던 중 학교생활하면서 불편한 건 없냐고 물으시던 선생님께 난 습관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드렸지만 내심 또 쓸데없는 소리만 했다고 후회를 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의 상황은 나의 예상을 또 다른 방향으로 빗나가고 있었다.
지저분하던 교실의 뒤편엔 청소용구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청소함이 만들어졌고 군데군데 튀어나와있던 책걸상의 나사들도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날카롭게 각진 벽이나 기둥에는 푹신푹신한 소재들이 덧대어져 시각장애 학생들이 부딪혀도 다치지 않게 바뀌어졌다.
처음 간부회의를 참석할 때부터 나의 노트를 채워갔던 변화들이 그제야 실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상적인 절차로는 되지 않던 것들이 교장선생님과의 몇 마디 대화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매우 씁쓸한 일이기도 했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의 소리를 들어준다는 건 따뜻한 소속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학생회의의 구조는 그 뒤로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난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열심히 의견을 내고 그중 몇 가지는 큰 변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우연히 뵙게 되었던 교장선생님 덕분이다.
얼마 전 지하철 개찰구에서 울리는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라는 말이 복지대상자가 지나갈 때는 나지 않는 것에 대해 SNS에 게시한 적이 있다.
별 것 아닌 차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별 것 아닌 변화에서조차 소수는 배제되고 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의 타임라인에 속상한 마음을 적긴 했지만 큰 영향력 없는 나 같은 사람의 발언으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냥 푸념하고 동의를 받는 것쯤으로 나의 현실적 기대치는 머물러 있었다.
늘 지나가던 어느 날의 출근길 나의 복지카드가 대어진 개찰구에서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라는 낯 선 안내 맨트가 나왔다.
옆에서 난 소리를 잘못 들었으려니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퇴근길에도 다음날에도 개찰구는 나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개찰구는 눈이 보이는 사람 말고 나 같은 사람도 코로나가 위험하니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걱정해 주었다.
아주 어릴 적 경험했던 따뜻한 공동체의 소속감이 느껴졌다.
나의 작은 외침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동의되었고 그것은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 어떤 담당자의 손을 움직여 내게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배려로 이어졌다.
지하철을 타는 것이 출근을 하는 것이 괜히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구성원이 공동체를 사랑하고 공동체를 위하여 움직이는 것은 그들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작은 움직임으로 출발한다.
교장선생님 덕분에 난 학교를 사랑할 수 있었다.
서울시의 어느 직원분 덕분에 난 서울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교장선생님과 서울시에 감사드리며 모든 이들이 스스로가 속한 공동체를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