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류스타!

by 안승준

아무 곳도 가지 말라는 반강제적 권유를 받은 지난 추석 연휴 내가 선택한 집콕 시간 보내기 메뉴는 드라마 정주행이었다.

TV 시리즈물을 보는 것에 대해 그리 흥미를 느끼는 편이 아닌 나였지만 대한민국 안방을 넘어 세계인들을 들썩이게 만드는 한류문화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친절하게도 화면해설까지 입혀진 작품들은 하루에 몰아볼 것을 예상하고 제작한 듯 대체적으로 16부작이었는데 오전에 시작해서 늦은 밤까지 시청하면 한 편의 스토리가 완결되었다.

남자 주인공들의 역할은 북한의 군인이기도 했고 사업체의 대표이기도 했고 병원의 보호사이기도 했는데 신기한 것은 직업도 처한 상황도 나와는 많이 달랐던 그들에게 난 몇 회 지나지 않은 시간들 속에서 완벽히 동일시를 느끼고 있었다.

배우들의 팬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난 온전히 현빈이자 김수현이자 박서준이었다.

중간에 끊기 힘든 몰입감 높은 스토리 덕분에 난 사흘 밤낮을 온전히 한류문화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취해있어야 했다.

때때로 여배우들의 역할에서 까지 나를 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느끼면서 스토리를 만들어 낸 작가들의 강력한 힘을 느꼈다.

주책스러운 눈물들과 미친 사람 같은 웃음소리를 내 안에서 끌어낸 것은 분명 작품 속의 역할들이 나의 삶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많이도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아프고 힘들었지만 우리가 바랐던 것처럼 감격스러운 날들과 마주하기도 했다.

답답하다 느껴질 만큼 우직한 주인공들의 자기희생들에 안타까워하며 애태우기도 했지만 그건 나의 모습이었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어떤 장면을 볼 땐 잊힌 과거가 떠오르고 어느 독백을 마주할 때엔 가슴속 깊은 곳에 묻혀있던 오래전 다짐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시간순으로 써 나갔을지 결론을 정하고 중간중간의 장치들을 삽입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분명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공감될 수 있도록 우리를 닮을 수 있도록 수십수백 번 고쳐내고 덜어내었을 것이 분명하다.

어떤 사랑도 아프지 않고 달콤하게 결론지어지고 어떤 배우도 절대 다치지 않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만약 그랬다면 아무도 보지 않는 드라마가 될 것을 알고 있기에 작가는 스스로의 창조물을 다치게 하고 상처를 만드는 시간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눈물과 고통이라는 단어는 작가에게도 유쾌한 것들이 분명 아니었겠지만 진정 단단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스스로 경험한 작가는 관객들을 닮은 극을 완성하기 위해 한 번 더 쓰린 단어들을 적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인고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울고 웃고 열광한다.

16개의 영상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어떤 역할은 많은 것을 잃기도 하고 어떤 역할은 크게 성공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마지막의 시간을 만난다.

상업적 영상물의 특성상 주인공의 해피앤딩을 중심으로 스토리는 흘러가지만 다른 배역들의 결론들도 끝나는 시간이 되면 대체로 우리의 이해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순간순간 가슴을 조이고 걱정하고 주인공이 당장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까 벅찬 기대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극 초반에는 그런 예상에 맞는 답을 보내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무리의 시간이 되고 회상신들이 펼쳐지면 그 모든 장면과 시간들이 모두 다 연결되어 하나의 시간으로 가는 정교한 조각들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드라마의 삶은 우리를 닮아있다.

반대로 우리의 삶 또한 드라마를 분명 닮아있다.

하루 이틀의 시간들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것은 삶이라는 드라마에서 한 장면을 이루는 조각일 뿐이다.

드라마가 그렇듯 대체로 우리의 마지막도 해피앤딩을 향해간다.

잠깐 힘들고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의 스토리를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장치일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