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하여 꺼내 입어 본 셔츠가 이상스럽게 작아져 있다. 다른 것을 꺼내 보고 또 다른 것을 입어보아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몸에 딱 맞는 느낌이 들지를 않는다.
그나마 나은 것을 골라 입고 나가면서 혼자 생각했다.
'옷을 이렇게 잘 줄어드는 천으로 만들면 어떡하지?'
'빨래 몇 번 했다고 이렇게 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새 옷을 사러 갈 시간도 마땅치 않아서 불편한 착용감을 감수하고 며칠의 출퇴근을 반복하던 지난주엔 우리 학교 졸업생들의 앨범 촬영이 있었다.
매년 그렇듯 교사인 나도 제자들의 기념 한구석을 채워주고 싶은 욕심에 정장 한 벌을 꺼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경조사에 직접 참석할 일도 없어서 몇 달만에 꺼내 보는지 잘 기억도 안 나는 옷이었다.
세탁과 다림질까지 말끔하게 되어있는 한 벌의 정장은 그냥 한 번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단정 해지는 묘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내일로 다가온 행사를 위해 셔츠와 상의 하의를 차례로 입어보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라 익숙한 편안함은 없었겠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내 옷 같지 않은 불편함으로 팔을 끼워 넣고 다리를 집어넣었는데 마무리 작업이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지퍼를 올리고 단추를 채우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 피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몸은 생각보다 많이 커져 있었다.
셔츠 대신 스웨터를 입고 이런저런 임시조치를 하고 나서야 하루 동안의 사진 촬영은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다.
퇴근 후 옷을 벗는 순간이 이렇게 행복했던 건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었다. 중세시대 철로 만든 코르셋을 탈출하는 여성들의 느낌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체중계에 올라보고 또 다른 가을 옷들을 하나하나 몸에 대어 보면서 정확한 현실이 파악되어 갔다.
옷의 크기는 줄어든 게 아니었다. 작년 그대로의 사이즈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가만히 있던 천들이 아니라 소리 없이 부쩍 불어난 나의 몸에 있었다.
이 셔츠도 저 바지도 작년에 보여주던 그 맵시가 나지 않았다. 급기야 한 녀석은 내 몸을 담아내려던 마지막 발악을 하다 부드드드득 실밥 터지는 소리를 내고 사망을 선고받았다.
한 벌한 벌 옷을 꺼내면서 소재를 의심하고 제조회사를 원망하고 세탁기를 불평하던 내 모습이 정말 부끄럽게 느껴졌다.
원인은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내게 있었는데 내가 찾고 있던 사고 발생의 근원은 나를 완벽하게도 제외하고 있었다.
내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나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특히 그 대상의 수가 전체 중 다수일 때는 더욱 그렇다.
모든 음식이 맛없다 느껴진다면 그건 요리사의 기술적 부족이라기보다는 나의 건강상태나 기분 탓일 확률이 높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말에 동의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초인류적 선구자일 가능성보다는 나의 판단이 틀렸을 확률이 훨씬 높다.
내 모든 옷들이 한날한시에 동일한 비율로 줄어들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 비해 내가 살이 쪘을 확률은 현실에서는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 높은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살면서 가장 풀어내기 힘든 문제 중 하나는 현존하는 세상이 나와는 전혀 맞는 구석이 없다고 느껴질 때이다.
이런 일을 해도 저런 의견을 내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을 때의 해법은 의외로 가장 간단하다.
나를 바꾸면 모든 것이 나에게 맞춰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운동량과 강도를 다시 올려 볼 생각이다.
줄어들었다고 느꼈던 옷들이 원래의 크기로 커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옷들의 사이즈를 키우는 방법은 나를 줄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