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해가 아쉬워서 송년회라는 이름으로 기울이던 술잔은 새로운 희망을 담은 신년회의 술잔이 되었다.
연말이고 연시고 그저 수많은 날들 중 하나라고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핑계라도 없으면 만나기 힘든 가족들 친구들 둘러 안자 주고받는 술자리만큼 의미 있는 자리 또한 별로 없다.
반가움의 크기가 클수록 관계의 소중함이 진할수록 오고 가는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잔도 병도 늘어가는데 그때마다 하게 되는 고민이 있다.
분명히 어젯밤의 뜨거운 분위기 속에 무언가 많은 것을 나누고 약속하고 다짐하고 했는데 끊겨버린 필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복구 불능의 상태로 만들고는 한다는 것이다.
술은 마시고 싶지만 기억도 났으면 좋겠고 취하고는 싶지만 적당히 취하고 싶고 숙취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들을 한다.
'견디셩' 같은 보조 음료를 마셔보기도 하고 가급적 물을 많이 마시면서 체내 알코올 농도를 희석시키려는 노력도 한다.
오이나 콩나물을 먹으면 괜찮다는 느 이도 있고 청량고추가 효과 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섞어 먹지만 않으면 된다고도 하고 도수가 높은 술부터 먹으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보았지만 일정량 이상의 음주는 그 모든 방법을 무색하게 만든다.
아무리 튼튼한 댐도 가둘 수 있는 수량을 초과하면 붕괴하듯이 사람의 간도 해독 용량을 넘어서서 들어오는 알코올의 범람을 뇌로부터 지켜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술을 먹고도 취하지 않거나 기억을 잘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것은 단 한 가지 술을 적게 먹는 것이다.
물을 많이 마시든 보조 음료를 마시든 이런저런 방법들은 모두 혈중 알코올 농도를 줄이려는 방법인데 그것 중 가장 확실한 것이 용질인 알콜량을 줄이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큰 고민들의 해결을 바라면서 근본적인 해법을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수능시험을 잘 보는 것이다.
서울대생의 입학 비법도 유명강사의 멘토링도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될 뿐이지 결국 대학을 잘 가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고 그러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는 수 밖에는 없다.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바꾸면 된다.
본인 스스로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데도 회복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면 그건 상대방이 원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스스로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뿐인 방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건을 많이 팔려면 그 물건을 사 줄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똑똑해 보이고 싶으면 지식을 쌓는 책을 많이 읽으면 될 것이고 건강해지고 싶으면 운동을 하면 된다.
술에 취하지 않는 방법만큼 대부분의 문제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다.
유식해 보이고 싶지만 책을 읽기는 귀찮으니 뭔가 특별한 비결을 찾는다.
날씬하고는 싶은데 많이 먹고 운동 안 하면서도 그런 방법이 있기를 원한다.
공부 적당히 하면서 서울대 가기를 원하고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우연히 만난 대박으로 인생 역전하기를 꿈꾼다.
관계를 회복하고는 싶은데 스스로가 가진 생각들을 바꿀 의지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문제는 풀리지 않는 미제로 영원히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새해가 되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요즘 사람들은 많은 다짐을 하고 많은 계획을 세우고 새해 소원을 빈다.
새해에 뭔가를 정말 이루고 싶다면 잠시 가만히 그 문제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의외로 답은 간단하고 그것은 스스로만 변하면 이룰 수 있는 소원일 수 있다.
술에 취하고 싶지 않다면 술을 줄이든지 술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꼭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정신 말짱하게 차 한잔 마시면서 하면 된다.
술 먹으면서 즐거운 만남의 자리를 밤새도록 가지고 싶다면 숙취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하면 된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 녀석들과 어젯밤 진한 술자리를 가졌다.
수많은 진심들이 오갔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속은 불편하고 정신도 맑지 않고 집은 쓰레기장이 되었다.
그렇지만 내년에도 또 그 내년에도 우리가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체력이 남아있을 때까지 우린 매년 이런 자리를 가지기로 했다.
우린 술 먹으면서 취하지 않기를 바라거나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아무 고민 없이 마음 편한 난장판을 즐겼고 숙취도 실수도 우리에겐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을 뿐이다.
어지럽게 흩어진 어제의 잔해들을 정리하면서도 내내 즐거운 건 나의 술자리의 목적이 깔끔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고 싶었을 뿐이고 더 끈끈해지기를 바랐을 뿐이고 그 목적에 충분히 충실했다.
많은 사람들의 새해 소망들이 단순하지만 직접적인 고민 안에서 쉬운 답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