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은 마스크뿐이 아니다.

by 안승준

삼한 사미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한반도는 미세먼지와의 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작디작은 먼지들은 본디 존재했지만 알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저런 새로운 요인들로 급속도로 늘어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쪽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한민족을 구성하는 절대다수의 머릿속에 '미세먼지는 해롭다.'라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 사람들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시작했다.


기상캐스터는 그날그날의 공기질을 알려주는 역할이 추가되었고 스마트폰에도 관련 애플리케이션들이 인기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재난경보 문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외출을 자제하라고 경고하고 정부나 지방자치조직들도 나름의 비상 저감조치를 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정보들과 조치들이 일반의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갑자기 일상의 출근을 외출 자제 권고를 핑계로 취소할 수도 없거니와 갑작스러운 저감조치들에 모두 호응할 만큼 서민들의 삶에 융통의 범위가 넓지도 않다.


그 때문에 최소한의 적극적 방어태세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 마스크 착용이다.


언젠가 한 두 명쯤 입과 코를 가리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유난스럽다고 손가락질하던 어른들의 얼굴에도 비슷한 장치가 추가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버스나 공공기관에서는 무료로 마스크를 나눠주기도 하고 그것들은 방진 기능이 확실한 산업용 마스크로 방어의 강도를 더해갔다.


일상의 비즈니스 스케줄을 거스를 수 없는 많은 이들에게 마스크는 든든한 방어구였고 심리적 안정이었다.


각 학교의 보건 선생님들은 마스크가 방진 효과를 넘어 체온조절과 습도 조절의 역할까지 한다며 예찬론에 가까운 공문을 홍보했고 관련 업체의 주식이 급상승하는 이상 경제현상도 나타났다.


그런데 며칠 전 한 교수님은 국민들의 굳은 믿음을 정면으로 깨뜨리는 너무도 충격적인 주장을 하고 나섰다.


'불편한 마스크의 진실' 그것은 제목 그대로 너무도 불편했다.


정확한 착용이 아니면 방진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건 그래도 들어봄직한 이야기라 하지만 호흡곤란이나 심장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은 분명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전에도 다수가 알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 정반 대적 반론을 펴는 사례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외국의 사례들과 관련 논문까지 근거로 제시하는 전문가의 주장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탄탄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공포 마케팅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마스크를 쓸 수도 벗을 수도 없는 혼란의 한 중간에 놓여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줄기세포'라는 혁신적 의료기술을 들고 나왔던 그분의 실체를 알았을 때도 '우유의 진실'이라는 글이 떠돌았을 때도 '북한의 실상'이라는 반공 영상들이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는 증언들을 처음 접했을 때도 사람들은 스스로가 굳게 믿고 있던 맹신의 근본이 깨어지는 것에 크게 힘들어했다.


난 아직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 벗는 것이 옳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를 않는다.


북한의 삶에 대해서도 어느 전문가의 주장이 맞는지 탈북한 어떤 이의 증언이 정확한 것인지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우유를 마시는 것이 좋을지 원전의 찬반 논쟁에서는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나는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일 뿐 언급한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내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양편으로 나뉘어 주장하는 학설을 듣고 근거의 타당성이나 논리의 건전함을 따지고 한쪽으로 조금은 기울어진 판단을 내릴 수는 있겠으나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진리라고 말하기엔 내가 가지는 확신의 근거는 너무도 약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다수의 입장이라는 이유로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과도한 믿음을 가지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ox퀴즈 놀이에서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다수의 방향을 따르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어느 순간 믿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들은 좀 더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


군중심리를 따라 스스로의 신념을 정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다.


다수가 저지르는 오류는 그 충격 또한 작지 않다.


나는 다양한 소수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또한 근거 없는 다수 따르기에 근거했다고 생각한다.


권력의 다수를 차지한 일부의 남성들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여성에 대한 억압적이고 왜곡된 관념들을 어리석은 다수를 향해 쏟아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는 여성들조차도 역사의 많은 페이지 속에서 근거 없는 우열의 역할론을 옳은 것이라고 믿어왔고 그것은 아직도 모두 다 고치기엔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냈다.


장애에 대한 개념들도 수 세기 전 종교지도자들 마저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몰아가고 확신했던 것이 지금의 불편함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논점도 난민 문제에 대한 것도 대부분 우리는 몇 가지도 알지 못하면서 입장을 정하고 주장을 쏟아낸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근거 없이 여과 없이 수용하고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결국 마스크의 불편한 진실처럼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될지 모른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에 스스로의 논리적 비판을 더하기를 바란다.


다수는 항상 옳지는 않다.


누군가의 치밀하지 않은 선동으로 우리는 오늘도 의도하지 않은 무지를 행하고 폭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생각하자 인간은 사고할 수 있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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