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닮은 커플이 있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살다 보면 조금씩 닮아간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같은 동네에 오래 사는 사람들이 비슷한 말씨나 단어들을 쓰는 것처럼 오랜 친구들끼리는 뭔가 닮은 부분이 있는 것도 함께한 시간이 서로를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 기숙사 생활을 할 땐 같은 방 사용하던 몇몇 친구와 형제 아니냐는 질문을 꽤나 많이 받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나쁜 것보다는 서로의 장점을 닮아가는 것이 더 많아서 나의 기숙사 생활은 대체로 나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운동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는 건강관리하는 습관을 길렀고 컴퓨터 잘하는 친구에겐 기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잘은 못하지만 악기 다루는 것에 눈을 뜨게 된 것도 보이지 않은 눈으로 이런저런 주변 관리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나와는 조금 다른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축적된 나의 업그레이드들이다.
가끔 오랜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친구들도 어떤 부분은 내 덕분으로 달라진 부분 있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우린 서로의 다름으로 각자 좋은 영향을 주고받은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도 자주 투닥거리시기는 하지만 40여 년간 함께 사시면서 분명히 적지 않은 부분 영향을 주고받으셨기에 다른 사람들 보기에 닮은 짝꿍으로 보이는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 20여 년 만에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블로그도 살펴보고 각종 자료도 찾아보고 하면서 이런저런 기대 가지고 간 그곳에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특별한 다름이 아닌 닮음이었다.
고등학교 때 갔던 일본의 기억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는 느낌이었다.
음식도 교통수단도 길거리에 나오는 음악도 안 보이는 눈으로도 충분히 여기가 이국땅이라는 것을 느낄 만큼 다름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에는 보급되지 않은 자그마한 휴대폰이나 통신기술에 놀라기도 했고 복잡한 지하철 시스템은 귀국할 때까지 적응이 잘 되지 않았었다.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라는 몇몇 음식점의 메뉴들도 국내의 같은 지점들과 정말 같은 뿌리가 맞는 걸까 할 정도로 다른 맛 다른 향을 가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러 가지로 지금보다 한일관계가 활발하지 않아서였겠지만 첫 일본 경험의 분명한 결론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의 그곳은 일본어를 쓰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니면 그곳이 한국의 어느 동네라고 해도 어렵지 않게 속아 넘어갈 만큼 비슷한 점이 많아져 있었다.
음식도 특별히 전통음식점을 표방한 곳이 아니면 한국에서 먹던 것과 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가까워져 있었고 내 느낌이긴 하지만 길거리 음악도 한국음악과 예전에 비해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일본이 변한 것인지 한국이 변한 것인지는 몰라도 지하철 시스템도 특별한 적응이 필요 없을 정도로 비슷했고 거리의 풍경도 호텔의 구조마저도 왠지 모르게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20년 전에 비해 두 나라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있었다.
내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는 오래전 일본에서 보았던 그것의 편리함을 닮아있었고 일본의 문화들은 한국의 것들을 많이도 닮아있었다.
이런저런 닮음을 느끼면서 문득 다름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닮아감의 대상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어느 쪽이 나았더라도 문화적으로는 반대였을지도 모른다.
음식도 노래도 서로의 장점을 닮아가면서 조금 더 발전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도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것도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도 닮아내지 못한 다름의 조각을 찾아내기 위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다름들 속에 어쩌면 부족함이나 틀림이라고 느끼는 다름들 속에 우리의 업그레이드 포인트가 숨어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인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그랬듯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랬듯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닮아가고 비슷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의미 있는 가치는 조금 다른 소수에게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 오지를 찾아 떠나는 탐험가처럼 우리도 그동안 마음 나누지 못했던 소수들에게서 다름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