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는 먹고 싶을 때 먹어야 맛있다

by 안승준

토요일의 늦은 아침! 동네 피자집에서 문자가 도착했다.


재개업 기념 이벤트! 대표 프리미엄 메뉴 50% 파격 할인! 전화주문 시엔 스파게티도 무료! 콜라 1.5l은 100원!

늦은 잠에서 깨어나 아점으로 때울 무언가를 찾던 독거인에게 이만큼 솔깃한 제한은 없었다.


광고성 문자에 쉽게 혹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 정도 혜택을 무시하는 건 대한민국의 경제인의 한 사람으로서 예의가 아니었다.


큰 고민 없이 바로 전화를 걸어 피자와 스파게티 그리고 콜라를 차례대로 주문하고 마지막으로 내게 찾아온 특별한 제안에 대해 확인을 시도했다.


문자를 수차례 곱 씹으며 본 터라 별다른 돌발상황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1%도 없었지만 그래도 형식상 한 번은 물어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점원도 웃으면서 행사 중이 맞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포장이시지요? “


난 당연히 피자를 포장 안 하고 어떻게 배달이 되나 싶어서 그렇다고 했는데 그다음부터가 조금 이상했다.


몇 분 정도 걸리냐고 물어보는 건 내 몫이어야 할 것 같은데 그쪽에서 물어왔다.


받을 주소를 이야기하고 조금 더 대화가 진행되고 나서야 이번 행사는 방문포장 시에만 가능한 이벤트임을 알게 되었다.


세세한 대화 내용을 모두 적을 수는 없지만 나의 확인 작업이 조금만 허술했더라도 우리 집에는 할인이 적용되지 않은 고가의 메뉴들이 배달되고 난 많이 억울한 지불을 하고 우울한 식사를 했어햐 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말로 낚시라는 것에 제대로 걸릴 뻔한 것이다.


조금 발품을 팔고 노력을 더해 방문포장을 진행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난 그들의 상술에 기분이 상한 뒤였다.


괜스레 억울하고 아쉽고 분하고 하는 감정들이 순간 머릿속을 맴돌았다.


푸짐한 톱핑이 올려진 바삭한 피자와 담백한 스파게티가 내 앞에 이미 있었다 사라진 것 같은 배신감이 들었다.


혼자 투덜거리면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저녁에 만난 친구들과 기어코 피자를 시켜 먹었다.


그런데 그 피자는 그리 맛나거나 내 맘에 쏙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난 원래 피자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내가 원했던 것은 피자 자체라기보다는 많이 저렴한 가격에 큰 수고로움 없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도 않던 혜택에 대한 아쉬움으로 난 지불하지도 않아도 되었을 지출을 했고 오전에 느꼈던 아쉬움은 당연히 해결될 리도 없었다.


살다 보면 해결되지 않을 것들에 대한 아쉬움들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첫사랑이 돌아오기를 바라던 기다림이 그랬고 조금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의 마음도 그랬다.


불수의적으로 작동하는 심정의 변화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대한 무모한 아쉬움은 사 먹지 않아도 될 피자에 대한 지출처럼 나 스스로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루를 지내고 한 해를 살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은 항상 바라고 원하는 대로 최상의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직장일도 건강도 친구도 사랑도 꿈도 완벽보다는 다소의 아쉬움을 동반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것들은 아쉽기는 해도 내게 있어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그런 것들은 또 아니다.


파격적인 가격으로 피자를 먹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난 혼자 먹는 식사치 고는 충분히 훌륭한 음식들을 먹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아쉬워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또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건 쓸데없이 사 먹은 또 다른 피자처럼 내게 있어 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첫사랑은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없지만 그 아이가 돌아온다고 해서 그때의 내 마음과 같을 가능성은 더더욱이 없다. 난 지금의 감정과 현재의 관계들에 집중해야만 한다.


조금 더 좋은 대학에서 공부했더라면 나의 삶이 조금 더 나아졌을지는 모르겠지만 4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그런 것들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시력 좋은 눈을 가졌더라면으로 시작되는 모든 일들도 상상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현재와 현실에 집중해야 하고 아쉬움은 과거에 집착하기 위한 감정보다는 또 다른 미래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반성 정도로만 여기는 것이 좋다.


퇴근길에 최신형 휴대전화 무료 기기변경이라는 광고에 이끌려 대리점으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역시나 낚시였다.


복잡한 수식들과 할인율을 최대한 빠른 말들로 내게 속삭이며 유혹의 손길을 뻗쳤지만 수학교사인 나의 계산으로 풀어보면 줄 돈 다 내고 기계를 바꿔준다는 말이었다.


이번에도 아쉬웠다. 뭔가 새 전화기가 내 손에 들어왔다가 다시 떠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난 광고를 보기 전엔 휴대전화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고 지금 쓰는 전화기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쉬워하는 그 무료의 최신 전화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허상에 대한 아쉬움은 또 다른 충동의 지출로 연결될 수 있었지만 이번엔 정신을 제대로 차렸다.


건강한 아쉬움과 반성은 더 나은 결과를 위한 밑거름이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허상에 대한 아쉬움은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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