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나눔

by 안승준

출근길 마을버스에 탑승하면서 카드를 단말기에 대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앞으로 대 보고 뒤로 대 보고 가까이 대 보고 멀리도 대어보지만 "승차입니다."라는 메시지도 '삑!'하는 비프음도 들리지 않는다.


뒷줄에 서 계신 다른 승객들께 미안한 마음에 기사님께 안쪽에서 다시 찍어보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다시 한번 카드를 대어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갑에 들어있는 다른 카드들까지 대어보지만, 교통카드 기능이 없거나 유효기간이 지난 카드들뿐이다. 며칠 전부터 접촉이 불안하다고 느끼긴 했는데 이제 완전히 칩이 기능을 상실해 버린 듯하다.


거의 매일 한 두분 정도는 동료 선생님들이 같은 차에 탑승하셨었는데 마침 오늘은 그런 일행도 없다. 기사님께 매일 타는 버스이니 내일 두 명분을 찍어도 되겠냐고 염치없는 부탁을 드려보는데 대답이 없다. 못 들으셨나 싶어서 다시 한번 물음을 던지지만 곤란하신지 대답을 피하신다.


뾰족한 방법은 없고 버스는 출발하고 달라질 것 없는 지갑만 더듬적거리는데 바로 뒤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이분 요금 제가 내드릴게요."하며 나서신다. 그제야 '삑!' 하는 비프음이 들리고 "승차입니다."라는 탑승 허가의 메시지가 울렸다. 매일 듣던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워질 줄은 몰랐다. 너무도 감사했는데 굉장히 죄송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이분 여기서 매일 타시는 분이에요. 매번 타시는데 오늘만 카드가 잘 안돼서 그런 거예요."라고 기사님 들리게 편을 들어주시는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라고 연신 허리를 숙였지만, 호의를 그냥 그렇게 받는 것 말고는 그 분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런 답을 내어주지 못하는 가방과 지갑만 뒤적이는 내게 "그냥 계세요. 그러시다가 다른 물건 떨어뜨려요."라고 말씀하시는 아주머니는 오늘 아침 나의 은인이 되었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송금이라도 해 드릴지 여쭈어보지만 놔두라는 말씀만 계속하신다.


카드를 두고 오거나 잘못 가져오는 실수 정도야 누구나 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 같으면 감사하게 호의를 받고 다음번에 만날 때 어떻게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난 다른 날 그분이 나의 바로 옆에 줄을 서 계셔도 알 수가 없어서 당장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음에 더 전전긍긍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어느 때보다 더 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내렸다. 돈으로 따지면 겨우 천원 조금 넘는 액수였지만 오늘 아침 나에겐 어떤 선물보다 큰 나눔이 되었다. 도중에 내릴 수도 갑자기 새 카드를 가져올 수도 없는 나에게 대신 요금을 내 준 아주머니를 위해 온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세상에 큰돈을 가질 기회가 있다면 용기 있게 올바른 곳에 나눌 수 있는 저런 분들에게 그 기회를 베풀어 주소서!'


멋진 나눔은 큰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나누더라도 꼭 필요한 곳에 베풀 수 있다면 억만금을 나누는 것보다 가치 있다. 늦은 밤 어두운 골목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살짝 팔꿈치 내어준 어떤 이의 도움이 그랬었고 타는 듯한 여름날 나눠준 냉수 한 모금이 그랬다. 값비싼 음식을 대접받아 본 적도 있고 큰돈을 장학금으로 받아 본 적도 있지만 오늘 내게 나눈 천 원의 버스비가 결코 그보다 작은 나눔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산다. 더 가지려는 노력보다 큰 것을 나누려는 마음보다 이미 가진 것을 꼭 필요한 곳에 나눌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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