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가 달던 날

by 안승준


어릴 적 우연치 않은 기회에 술의 맛을 알게 된 적이 있다.

보리차를 넣어 두던 병에 담겨서 냉장고에 가지런히 놓인 담근 줄 당연히 냉수일 거라 믿고 한 컵 가득 따르고 입안 가득 큰 모금으로 넘겼을 때의 그 충격은 3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끔찍하게 남아있다.

단언컨대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뒤 콜라인 줄 알고 간장을 들이켰을 때의 놀람의 크기보다 분명 몇 배는 더 컸다고 확신한다.

쓰기도 쓰고 이상한 냄새까지 나는 그런 걸 할아버지는 왜 그리 열심히 마시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한동안 그런 걸 먹는 어른들에 대한 이미지마저 바꿔놓았을 정도로 인생의 사건이었다.

생선의 창자 따위를 골라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도 맵디 매운 쫄면을 눈물 흘려가며 드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그 충격의 강도는 조금씩 덜해갔지만 단 것 좋아하던 어린아이의 눈에는 신기함을 넘어서 이해 안 되는 모습들일뿐이었다.

난 그저 과자가 좋았고 짜장면이 좋았고 돈가스가 좋았을 뿐 그 이상의 메뉴와 맛은 내게 있어서만큼은 선택의 범위 밖에 있는 의미 없는 존재들일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짜장면을 넘어서 짬뽕이라는 얼큰함의 맛을 알게 되면서 메뉴판 안에서 나의 선택지도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생선은 버릴 게 없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했고 쫄면을 드시던 어머니는 울고 계셨지만 우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알아갔다.

마침내 소주의 맛까지 조금씩 알아가던 스무 살 무렵 난 오래전 할아버지의 그 여유로운 인자함의 원천에 대해서도 조금씩 수수께끼를 풀어가고 있었다.

술을 알고 안주를 알고 단맛을 알고 쓴맛을 즐겨가면서 메뉴판의 모든 선택지는 내게 의미를 보내게 되었다.

때로는 더 독한 술을 찾기도 하고 겪어보지 못한 맛을 그려보는 내게 있어 이제 정해진 메뉴판은 조금 좁아 보인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난 요즘 살면서 겪는 내 인생의 메뉴판도 음식점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혀끝의 달콤함만 쫓던 어떤 날 처음으로 인생의 쓴 맛이 무엇인지 알아버렸을 때의 충격은 오래전 할아버지의 술을 우연히 맛보았을 때처럼 적지 않은 충격들로 다가왔다.

처음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던 날, 이번 생애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던 날, 첫 연인과의 이별을 실감하던 날의 공포는 인생 전체의 의미를 무상하게 만들 정도로 아팠다.

그런데 짜장면 밖에 모르던 내가 짬뽕 맛 아는데에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던 것처럼 난 가슴 얼얼한 이 맛도 입안의 매운맛처럼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도 하고 이따금씩은 그리워지는 것이라는 걸 알아갔다.

생선 창자의 비린맛도 삭힌 홍어의 쾌쾌한 맛도 나의 메뉴판에서 의미 있는 것들이듯 슬픈 일도 아픈 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 난 예전 할아버지가 뿜어내던 여유로운 인자함을 가지지는 못했다.

경험하지 못한 인생의 맛들이 내겐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마신 소주의 맛이 달다.

펄펄 끓는 찌개는 정말 시원하다.

새로운 음식을 알아가는 것을 즐기듯 겪어보지 못한 시간들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인생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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