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직종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대학생들과 함께 뉴욕을 다녀왔다.
월가에서 일하시는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도 만나고 첨단기술의 집약체인 구글도 방문했다.
대한민국과는 다른 제도와 시스템들 속에서 다른 모양으로 스스로의 진로를 개척하고 꿈을 이뤄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은 그 성공의 크기와는 별개로 나에겐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그 날의 저녁도 하루의 일정들을 마치며 뿌듯함과 나른함을 동시에 느껴가던 여느 일정과 다름없는 그런 시간이었다.
난 월급 받는 사람으로서 아직은 그렇지 않은 대학생들의 간식 정도를 사 줄 요량으로 카드를 내밀었고 그것을 받아 든 친구는 또한 선한 마음으로 마켓에서 본인의 카드로 계산을 했다.
마켓에 갔던 친구가 돌아왔을 때 우리는 서로의 따뜻한 배려를 느끼며 맛있는 간식을 먹어야 했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은 우리의 상황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카드를 들고나갔던 친구의 소지품 목록에서 나의 카드는 어느 틈엔가 찾을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조금 더 나쁜 상황은 나의 휴대전화에서 쉴 새 없이 카드가 사용되고 있다는 알림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드회사와 영사관에 최대한의 속도로 피해사실을 알리고 나름의 조치를 취했지만 순식간에 카드는 8번의 결재를 완수해 버린 상태였다.
너무도 친절한 영사관의 직원은 자국민의 보호와 최대한의 피해보상을 위해 경찰서를 찾을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거의 가 본 적 없는 그곳을 낯선 이국 땅에서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리 반가운 사건은 아니었다.
우리의 영어실력은 아주 훌륭한 편이 아니었고 내 기억 속 할리우드 영화 속 뉴욕 경찰은 큰 덩치들이 어울릴 만큼 험상궂고 괴팍한 모습들이었다.
'NYPD'라 불리는 뉴욕의 경찰서는 위치도 낯설었지만 그날따라 하늘에서는 폭우까지 내리고 있었다.
우비까지 뒤집어쓰고 팔짱 낀 채로 경찰서 앞을 두리번거리며 서성이는 두 명의 동양 남성은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로 의심받기 딱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도 스스로 그렇다는 것을 알았기에 약간의 두려움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경찰들은 너무도 친절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어 통역을 부탁하자마자 한국말이 유창한 경찰을 보내주었고 말씨도 태도도 사회복지사라는 착각을 할 만큼 다정했다.
나의 조서 작성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마음의 편안함이 찾아올 때쯤 난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장애인과 직종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공부를 하러 온 사람이다.
'혹시 경찰 중에도 장애인이 있을까?'
경찰관의 친절함은 나의 용기가 되었고 내 머릿속의 생각은 어느 틈에 입 밖으로 나온 질문이 되었다.
"시각장애인은 경찰이 될 수 없어요. 색맹도 안돼요. “
예상되었던 답변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기도 전에 믿기 힘든 대사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있기는 있어요. “
"경찰 업무를 수행하다가 다친 사람은 그것이 어떤 상태이든지 계속 일을 할 수 있어요. 목에 총을 맞아서 전신이 마비된 경찰도 있고, 머리에 총을 맞아서 시각장애인이 된 경찰도 있어요. “
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명예경찰쯤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말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전화를 받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컴퓨터 업무를 할 수도 있어요. 도둑을 잡으러 달려갈 수는 없지만 그들은 여전히 경찰가족이고 영원히 우리의 멤버입니다. “
증거사진까지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설명을 이어가는 그의 말에는 뜨거운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여전히 경찰가족이라는 말을 할 때는 가슴 한 구석이 찌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겉모습이 달라지는 건 그들에겐 부족해지거나 무능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동료들을 대신해서 용감하게 싸운 경찰의 부상은 오히려 존경받을 증거였고 장애는 그저 달라진 모습일 뿐이었다.
장애인의 90% 이상은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를 가진다.
친절한 뉴욕 경찰 아저씨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여전히 나의 친구이고 동료이고 국민이고 사람이다.
우리는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뉴욕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경찰도 있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경찰도 있다.
참고영상: https://www.facebook.com/135045159944028/posts/2109790172469507?sfns=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