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가 무단횡단을 하는 이유

by 안승준

뉴욕의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보고 있으면 낯선 광경 때문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첫 번째는 건너가도 좋다는 신호가 초록불이 아닌 흰색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빨간 신호가 흰 신호로 바뀌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나 혼자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이다.

우리나라에도 신호등 무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과 비교해서 설명하기엔 뉴요커의 무단횡단은 너무도 일반적이고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

겨우 미국 한 번 다녀온 사람의 성급한 일반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설명하기엔 열흘 정도 현지에 머무르는 동안의 건널목 상황은 한 번의 예외 없이 같은 양상을 보였다.

착실하게 신호 기다리는 사람이 뭔가 잘못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들의 일사불란한 무법 행위를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정말 선진국 자처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특히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들의 의식과 겉으로 드러나는 합리적인 배려를 생각하면 그와 대비되는 건널목의 모습은 더욱 생경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성공한 장애인들은 스스로의 성공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ADA'라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90년대 초 제정된 이 법은 미국 사회의 어느 곳에서도 장애를 이유로는 어떤 차별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기본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을 어겼을 때의 처벌조항이 너무도 강력해서 정부기관과 큰 기업들도 관련한 법규에 대해 철저히 준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장애인 의무고용률 따위 무시해도 약간의 벌금만 내면 해결되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장애라고 하는 것은 냉정하게 볼 때 불편한 것이 분명하므로 장애인은 그가 속한 국가가 대하닌국이건 미국이건 그 밖의 어느 나라이더라도 장애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

그것까지는 어떤 장애인도 부인할 수 없는 동일하고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후 상황은 미국의 장애인들과 우리는 많이 달랐다.

그들은 힘들긴 했지만 노력의 강도를 높이고 시간을 늘리면 불편함으로 벌어진 차이는 좁힐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자격을 갖추기까지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능력이 인정된 이후부터는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신감의 원천이 바로 'ADA'였다.

'ADA'는 불편함을 근거로 불가능을 논하지 못하게 한다.

불편함과 불가능의 차이는 너무도 크다.

뉴욕의 대중교통은 서울에 비해 시설이 대체적으로 열악하다. 특히 지하철은 끔찍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떠한 불편함 가진 사람들에게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준다.

쾌적하거나 편안하지는 않지만 길목을 막지는 않는 것이다.

미국 사회를 사는 장애인들의 꿈 또한 그런 것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갈 수 있는 길목은 차단하지 않는다는 확신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고 때로는 초인적인 노력과 힘을 만들어 내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그것이 최근 30여 년간 'ADA'라는 차별금지법이 만들어 낸 공정한 사회였다.

우리나라에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없지 않다. 그것 또한 입법취지와 깃들어진 정신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적 한계로 인해 강력한 처벌조항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슬프게도 그러한 이유로 잘 지켜지지 않는 때가 더 많다.

미국의 무단횡단과 관련한 법률과 제도를 찾아보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조항은 있으되 강력한 처벌 사례나 실제적 단속은 거의 없었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은 그런 것이었다.

캠페인이나 인식개선 교육으로 많은 부분이 나아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큰 것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겐 어쩔 수 없이 강력한 법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에서도 80년대까지는 장애로 인한 차별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강력한 법이 생긴 이후 그것은 처벌을 두려워한 사람들의 변화로 자취를 감추고 어느새 차별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상식이 되고 인식이 되었다고 한다.

법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너무도 차갑다. 그렇지만 너무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것은 그것밖에 없을 수도 있다.

오늘도 우리나라의 건널목에는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착한 시민들이 있다.

우리의 교통법규 준수가 뉴요커들과 다를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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