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들과 이따금씩 카드놀이를 했던 적이 있다.
용돈 넉넉하지 않던 중학생들이라 기껏해야 십 원짜리 백 원짜리 오가는 그냥 심심풀이 놀이였지만 레이스가 벌어지면 우린 영화에서 보던 전문 도박사 못지않게 나름의 전략들을 발휘했다.
몇 시간씩 머리를 굴리면서 카드를 돌려도 몇백 원 잃거나 따는 것이 전부였던 게임에서 그 날은 뭔가 이상한 결과가 벌어지고 있었다.
백 원짜리 열 개 정도 들고 시작한 나의 동전통에 어느 틈엔가 만 원짜리 지폐가 생길 정도로 그날의 페이스는 역대 최고였다.
자금이 넉넉해질수록 나의 배팅은 과감해지고 그럴 때마다 나의 동전통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나의 동전이 쌓여 간다는 건 결국 친구들의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으므로 게임이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깊숙이 숨겨놓았던 비상금마저 탈탈 털린 친구들은 한판만 더! 열판만 더를 외치며 그날의 게임시간을 한없이 늘려갔다.
결국 나의 동전통에 백 원짜리 동전이 스무 개 정도 남았을 때쯤이 되어서야 기나긴 우리의 레이스는 끝이 났다.
그래도 처음 나의 본전을 생각하면 두 배쯤이나 되는 엄청난 성과의 마무리였지만 기분은 그렇지가 않았다.
어느 틈엔가 내가 느끼는 본전의 크기는 만 원짜리 몇 장이 들어있던 그때 그 상태가 되어있었다.
꽤 오랜 시간 즐겁게 놀고도 돈까지 따고도 썩 좋지 않은 기분이었던 건 단지 나의 잘못된 본전 생각 때문이었다.
며칠 전 난 25여 년 만에 안과 진료를 받았다.
실명 이후 첫 방문이었던 터라 몇 달 동안 관련 기사들도 통독하고 여러 사람들과 정보도 교류했다.
기도로 돕겠다는 이도 있었고 희망적인 가능성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큰 기대 없이 검사만 받아보려던 나의 마음은 어느 틈엔가 혹시나 하는 긍정의 가능성들을 품어가고 있었다.
전과 다르지 않은 눈 앞의 뿌연 빛들도 왠지 어제보다 환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의 몸의 변화도 시력과 관련이 있을 것만 같았다.
운동도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음식도 조심했다.
오랜만에 들어선 종합병원은 접수 시스템부터 많이도 변해있었다.
터치스크린으로 된 기계들이 사람을 대체하고 진료실은 번호표를 뽑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뭔가 변했다는 건 나에겐 또 다른 변화에 대한 희망적 기대로 작용했다.
큰 병원 특유의 오랜 기다림과 각종 검사가 끝난 후 난 드디어 의사 선생님과 마주했다.
미리 준비한 대로 그간의 내 눈의 상태를 시간의 순서대로 최대한 상세히 말씀드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기대하고 있는 바도 나름의 의학적 용어를 사용하며 꼼꼼히 전달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간곡함에 호응하시려는지 전자차트로 변한 수십 년 전 자료부터 방금 검사 된 결과까지 최선을 다해 꼼꼼히 들여다보셨다.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정적이었지만 내 심장은 시간과 생물학적 한계를 무시한 듯 달리고 있었다.
차트와 동료들 그리고 내 눈을 몇 번이고 보고 또 확인하시던 의사 선생님의 입술이 열렸을 때 그의 음성은 내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담담했다.
"시신경도 거의 살아있지 않고 지금의 기술로는 시력을 나아지게 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어요. 렌즈나 다른 도구들로 혹시나 하는 테스트도 해 보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유의미한 조치가 아니네요. 줄기세포 이야기도 하셨는데 그건 아직 권해드릴 만큼 명확한 연구결과가 나온 게 없어요. “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었을지 모른다.
난 국가에서 인정한 시각장애인이고 최근 어느 기사에서도 시신경 위축 환자의 개안 사례에 대한 명확한 보고는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부터 0에 가까운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큰 감정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나에게도 더 나빠진 것도 손해 본 것도 없었다.
오히려 현재의 정확한 상태와 그간의 의학기술의 변화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얻어가는 게 더 많았다.
게임으로 치면 본전 이상이었지만 잠시 기대치가 엉뚱한 본전을 향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난 오래전 시력이 좋던 때도 있지만 그건 지금 나의 본전이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지금보다 더 나빠지더라도 그것조차 그냥 나의 삶이다.
인생은 게임과 같아서 조금 더 얻을 때도 있고 때로는 운 좋게 많이 더 얻을 때도 있지만 스스로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많은 것을 잃을 때도 있다.
늘 본전 이상이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본전은 언젠가의 카드게임 때처럼 본전 아닌 본전일 때가 많다.
카드게임에선 따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
잃을 때도 딸 때도 게임을 즐길 줄 아는 자가 진정한 게이머이듯 삶도 그렇다.
난 아직 시각장애인이지만 내 삶은 여전히 괜찮다.
본전 생각 말고 하루하루 화끈하게 배팅하며 게임하듯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