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 사회의 문턱에 진입하고 있는 요즘 심심치 않게 나오는 뉴스 중 하나가 어르신 운전자에 관한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사례까지 언급하면서 보도되는 내용들의 요지는 나이 많은 사람들의 운전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어떤 기사에서는 심지어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면허증을 반납받거나 발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희끗희끗한 머리로 사고 난 현장에서 당황하고 있는 관련사진까지 첨부하면서 그들이 설득하고 싶은 것은 노인운전자는 도로의 민폐라는 것이다.
언젠가 여성운전자를 '김여사'라고 지칭하며 성적 비하를 하던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난 운전을 해 본적도 운전면허를 따 본 적도 없어서 그 기술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신체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에 비추어 볼 때 면허시험장에서 이루어지는 검증은 엄청나게 강인한 신체발달상황을 평가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국민의 40%~50%가 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의 조작능력만 갖추면 도로에서 운전하는 자격을 얻는 것은 법이 보장하는 것 같다.
특히나 몇 년에 한 번씩은 자격갱신을 위한 적성검사도 하고 있으므로 갑작스러운 신체능력의 저하나 상태변화는 그 과정에서 검사 되고 걸러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르신이나 여성을 포함한 모든 면허 소지자들은 최소한 현행법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운전자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운전능력이나 신체 상황이 절대다수의 다른 운전자에게 피해를 끼칠 만큼 부족한 것이라면 그건 면허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옳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에 비해 여성은 남성에 비해 대체로 운동능력이 덜 발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유의미한 신뢰도를 가지지만 그것이 운전을 제한할 만큼의 심각한 결점은 아니라는 것은 면허증 한 장으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렇다면 더 이상 어르신 운전자는 민폐 운전자라고 손가락질받을 이유가 없다.
노인운전자나 여성운전자의 사고율이 다른 집단의 그것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 원인을 당사자 집단에게만 돌리는 것은 단순하고 무리한 지적이다.
도로나 교통환경 혹은 자동차의 설계가 일부 집단의 운전에만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자동차의 핸들은 여성들이 조작하기엔 너무도 뻑뻑했고 수동기어의 제어도 일정 능력 이상의 신체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나고 부드러운 핸들이 계발되고 자동 기어가 달린 차가 나오면서 우리 어머니도 비로소 편히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어머니의 삶과 우리 가족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어둑어둑한 밤이 되면 표지판이나 차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어르신이 운전하는 택시를 탈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은 그분의 문제일까? 아니면 누구나 어느 시간에나 잘 보이게 만들어지지 않은 환경의 문제일까?
자동차는 1가족 1대를 넘어서 이제 성인 1인 1대에 가까워질 만큼 일반의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운전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는 쉽고 편안한 것으로 진화해야 한다.
어떤 집단의 사고율이 높다면 그 집단을 배제할 방법을 연구하기보다 그 집단도 품어갈 수 있는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무인자동차의 상용화 논의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약간의 신체능력의 차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기술은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F1레이서가 되려고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편리하기 위해 자동차를 탄다.
나이가 들더라도 성별이 여성이더라도 신체의 다름이 있더라도 우리는 모두 편리할 권리가 있다.
휴대전화는 요즘 실버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두 발 자전거 타기 힘든 나를 위해 보조바퀴 달린 네 발 자전거를 만들어 주셨다.
조금 느린 동료들이 있다면 버리고 갈 고민을 하기보다 함께 갈 수 있는 고민을 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를 바란다.
어르신 운전자는 민폐가 아니다. 그분들을 위해 먼저 고민하지 못하고 면허증을 빼앗을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가 이기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