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통령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데 일상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이 많다.
조각 같은 외모나 특별한 인기로 인한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보이지도 않는 내가 어떻게 누가 쳐다보는지 아느냐고 되묻는 이도 있겠지만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은 꼭 마주 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시선 좀 받아 본 사람이라면 대략 알 것이다.
숨소리도 있고 발자국 소리도 있고 목소리나 여러 사람이 내는 소리들로 짐작할 수 있다고 나만의 방법들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함께 동행하는 이들의 증언이 확실한 증거가 된다.
지팡이 짚거나 다른 이의 팔꿈치 빌려 길에 나서기만 하면 쏟아지는 시선들 때문에 어떤 이는 화를 내기도 했고 한 친구는 울기도 했다. 언젠가 이별을 고하던 그녀가 말하던 헤어짐의 이유도 나로 인해 함께 견뎌야 하는 주변의 시선들이었다.
외국에 나가 본 장애인들이 현지 문화에 대해 좋은 감정 담아 말하는 것 중 빠지지 않는 것도 특별하게 쳐다보지 않는 주변의 매너에 관한 것이다.
"저 사람 다리는 왜 저래?"가 아니라 "hello!"라고 평범한 인사 건네는 동네 꼬마에게 감동받아 울었다는 지체장애인 이야기도 들었고 아내 팔 붙잡고 하루 종일 다녀도 "어떻게 안 보이는 남편을 만났어요?"라고 묻는 이 없는 것이 타국 땅에 사는 큰 장점이라고 말하는 시각장애인도 만나보았다.
나도 이젠 익숙할 대로 익숙해졌는데도 한 번씩은 기운 빠지고 기분 상하게 하는 시선 폭력을 견뎌내지 못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정 많은 한국 사람들의 착한 마음들이라고 애써서 미화시키려고도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기엔 그들의 눈빛들이 매번 따뜻하고 포근하지는 않다.
그리고 좋은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 분별 못할 만큼 내 성격이 심하게 까칠하지도 않다.
난 나름의 역량으로 글도 쓰고 강연도 다니는 사람이다.
환경이나 주변의 태도가 장애인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서로가 기분 좋을 수 있는 교류나 친절은 무엇인지 수많은 공간과 시간들 속에서 이야기하고 쓰기도 한다.
꽤나 유명한 방송에 나가기도 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기도 하지만 내가 바라는 쪽으로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횡단보도 정지선 지키기'나 '긴급차량에게 차선 양보하기'처럼 어떤 계기를 통하면 장애인들에 대한 쓸데없는 시선들도 거두게 할 수 있지 않을까가 나의 큰 고민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선배 교사에게 들은 강의는 내 생각의 방향을 조금은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시각장애인의 보행'이라는 주제로 후배 교사들에게 그간의 경험을 전수하시던 그분은 관련 과목을 20년 이상 가르치신 전문가셨다.
기술이나 이론적 부분에도 밝으셨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계셨다.
시각장애인은 아니셨지만 당사자인 내가 듣기에도 놀랄 만큼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경험들을 풀어내 주셨다.
"시각장애인 독립 보행의 3원칙은 안전, 정확성, 품위입니다. 안전과 정확성은 당연한 것이지만 품위를 놓치면 안 됩니다. 어딜 가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시각장애인들은 그 순간만큼은 모든 시각장애인의 대표성을 가집니다. 한 사람의 자세나 움직임은 다른 이들에게 시각장애인의 대표 이미지가 될 수 있습니다. 따가운 시선들이 불편한 것은 알지만 그것을 없앨 수 없다면 반대로 그 시선을 이용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었다. 산을 옮길 수 없다면 그 산을 내가 이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조금 더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펴고 걷기 시작했다.
큰 차이는 없었겠지만 조금 더 단정하게 차려입고 품위 있는 걸음을 걸으려고 노력했다.
불쾌하게 다가오는 도움들은 여전했지만 친절하게 나의 상황과 적절한 도움에 대해 정중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 또한 큰 영향력 가지지 못한 한 강연자의 짧은 강의처럼 대단한 변화를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 순간의 선택지 중 최선이기도 했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도 그 상황 안에서의 최선은 존재한다.
미약한 최선을 택하는 것과 불평과 포기를 택하는 것은 완벽히 다른 결과를 향할 것이다.
난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들이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생각과 시선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를 향한 수십수백의 삐뚤어진 시선을 이용할 것이다.
해결하지 못할 문제에 부딪혀 있는 많은 이들에게 그 상황에서의 최선을 찾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