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것 좋아하고 직업도 강의하는 것인 데다가 취미도 밴드 보컬인 난 몇 년 전부터 코와 기관지 건강이 좋지 않아 지는 걸 느끼고 있다. 기어코 서울 사는 현대인들 다 걸린다는 비염을 피해 가지 못한 나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공기청정기와 가습기도 같은 이유로 우리 집에 살게 된 친구들이다.
지난겨울의 건조함을 덜어내기 위해 들여놓았던 가습기는 습한 여름철이 되면서 잘 포장해서 창고에 넣어두었었다. 어느 봄날 방진마스크 한 무더기와 함께 구매한 공기청정기는 대한민국의 공기가 사시사철 미세먼지와 사투를 벌이는 이유로 겨울이 되기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겨울이 오고 쉬고 있던 가습기가 본연의 업무에 복귀하게 되면서 두 기계는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공기를 깨끗하게 해주는 녀석과 적당한 습도를 유지시켜 주는 녀석은 아주 좋은 단짝이 될 것 같았다. 내 코도 나의 생활도 둘의 시너지로 뭔가 급속도로 건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기대가 현실이 되는 첫날 저녁 난 퇴근하자마자 두 개의 스타트 버튼을 거의 동시에 눌렀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상쾌한 공기를 기대하며 나왔을 때 예상과는 달리 공기청정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공기질이 좋지 않았던 날이라 정화시키는데 조금 오랜 시간이 걸리나 보다 했지만 자동 세기로 설정해 놓은 기계는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모터의 세기를 높여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아본 가습기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극도로 건조한 상태를 조금이라도 촉촉하게 바꿔보려는 듯 그 녀석 또한 최대의 강도로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제야 난 조금씩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초음파를 이용해 물분자를 잘게 쪼개어 뿜어낸 가습기의 성과물을 공기청정기는 미세먼지로 파악하고 있었다. 미립자는 그 속성에 관계없이 모두 걸러낸다는 최신의 해파필터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역할 수행이기도 했다.
가습기 역시 아무리 수분을 뿜어내도 올라가지 않는 실내 습도 덕분에 스스로의 최대치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립자 표시를 표시하는 센서의 수치는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었고 습도는 반대로 그 수치가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각자가 열심히 일할수록 서로의 부담만을 더해갈 뿐 어떠한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다.
두 친구 모두 나의 쾌적함을 위해서 같은 방향으로 일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서로의 다른 생각들로 격한 토론이나 논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가정을 위해서 학교를 위해서 직장을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각자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고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할수록 언성은 높아지고 피곤함과 에너지 소모의 속도만 높여간다.
서로가 같은 방향을 향한 긍정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 순간의 고집으로 서로를 설득하려고만 한다.
습도를 조정하는 것도 미립자의 수치를 낮추는 것도 모두 건강을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방법론적인 차이였을 뿐인데 서로의 생각들을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단재 한다.
공동체를 의도적으로 나쁜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옳지 않은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토론에서 열을 올리는 사람도 쉽게 찾기는 힘들다.
우리 집의 공기청정기와 가습기는 서로의 구동 시간을 나누어 주면서 각자가 가진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상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습도가 너무 낮을 때 가습기를 틀고 정상범위를 찾으면 공기청정기를 가동한다.
미립자의 수치가 어느 정도 낮아지면 다시 가습기를 틀기도 한다.
둘은 여전히 같은 기능을 수행하지만 서로가 일할 때 잠시 물러 나 있는 것만으로 상생의 방법을 찾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닐 때가 많다.
당장은 내 방법만 옳아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옳을 때도 있지만 상대가 옳을 때도 많다.
서로 잠시 물러서서 귀를 기울이면 두 옳음은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다름은 부딪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퇴근길엔 선배 선생님과 별것 아닌 일로 격한 논쟁을 했다.
큰 차이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단어 몇 개의 차이는 말을 주고받을수록 목소리를 키우는 소모적인 시간을 늘려가고 있었다.
집에 와서 차분히 생각해 보면 웃음마저 나올 만큼 아무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우리 둘 모두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것은 같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가습기 앞의 공기청정기가 되고 공기청정기 앞의 가습기가 된다.
나와 의견을 주고받는 이가 특별히 악한 이가 아니라면 잠시 작동을 멈추고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
내가 필요한 시간은 머지않아 찾아오고 우리 둘은 환상의 콤비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