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을 위한 연극 공연을
응원합니다

by 안승준

시각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연극 공연이 시도되었다.

장면을 해설하는 목소리 대신 수십 개의 스피커를 설치하여 공간감을 실제와 가깝게 느끼게 하는 것으로 공연 이해를 돕는 형태였다.

신기하고 궁금하기는 했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더 컸다.

아무리 첨단의 스피커라고 해도 실제를 실제보다 더 낫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인데 난 실생활 속에서 내가 속한 공간을 주변의 소리만으로 100%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벽에 붙은 안내판이나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까지 소리로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장면의 배경이나 배우들의 몸짓은 음향의 질을 높이는 것만으로 시각장애인의 이해의 부족함을 채워주지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이라는 타이틀은 반사적인 부정적 견해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연이 닿아서 초연을 하기 전에 음향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바닥을 제외한 직육면체 모양의 스튜디오 5면을 빼곡히 채운 수억 원어치 스피커의 성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락밴드나 재즈 앙상블 음악을 틀어줄 때는 무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았고 연주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글 소리를 들을 때는 날아가는 새를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커다란 맹수의 울음소리에는 살짝 어깨가 움츠려 들기도 했다.

음향 엔지니어의 섬세한 조작으로 동물들의 소리를 조작할 때는 어떤 동물들은 내 앞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다른 동물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했다.

우리 집에 저런 것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만큼 스피커와 음향은 굉장히 훌륭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장면해설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 공연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원래 있던 일정마저 뒤로 미루고 멀기도 먼 공연장을 찾아갔다.

여전한 궁금증과 또 한편 여전히 남아있는 의심들로 난 공연 내내 청각의 집중도를 최대치로 올리고 귀의 안테나를 세웠다.

무대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많은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배우들이 소대 될 때와 마지막 인사를 할 때도 그들의 외형적 생김들과 차림새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폴리아 티스 트라고 소개된 두 분의 남녀는 강아지 소리부터 천둥소리까지 리얼한 효과음을 실시간으로 만들어 내었고 현악기와 건반으로 이루어진 라이브 밴드도 장면 이해를 돕기 위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극의 전개도 빠른 편이 아니어서 난 한 시간의 공연시간 동안 큰 혼란 없이 내용을 이해하고 소리들을 즐겼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반인이나 장면해설의 도움 없이 관람한 것 치고는 꽤나 괜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았던 동료와 감상평을 공유했다.

그런데 나의 이해는 내 생각과는 달리 실제 장면과 조금 다른 점들이 있었다.

대부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포인트들을 놓친 경우도 있었다.

역시나 배경이나 주인공들의 작은 움직임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허탈했고 실망스러운 감정들이 올라왔다.

잔잔한 스토리가 이어지는 빠르지 않은 극조차 이런데 전환이 빠르거나 주임 공들의 빠른 움직임이 있는 극은 도대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이라는 타이틀이 또 한 번 거북스러웠고 예산의 기회비용에 대한 아까움에 가슴이 부글 거리기도 했다.

극장 출구에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감상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방송국 스태프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전 같았으면 이것이 기회다라고 생각하고 머릿속의 모든 비판들을 최대한의 날카로운 단어를 사용하여 인터뷰로 내뱉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난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냅니다' 라는 방향으로 맥을 잡고 마이크에 목소리를 담았다.

몇몇 장면에 대해 난 엉뚱한 해석을 하고 있었고 또 몇 장면은 아예 중심 스토리를 놓치고 있기도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연출자의 의도에 맞는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이라는 타이틀이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일정 포인트는 시각장애인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기도 했고 타이틀만 바꾸면 첨단의 스피커들은 많은 이들에게 화려한 사운드의 공연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장애인들을 위한 새로운 기술들과 시도들은 1년에도 꽤나 많은 모양과 방법으로 시도된다.

운 좋게도 난 그것들에 대한 최초의 경험자가 되는 기회를 자주 가진다.

단번에 나를 만족시키는 새로움 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게 뭐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난 첫 체험 자라는 책임감은 잘못된 시도는 싹부터 잘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고려하지 않은 것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내는 것도 현실 적용이 어려운 것도 냉정하게 비판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경험의 크기가 늘어가면서 들게 되는 생각은 무조건적이고 냉정한 비판만이 옳은 결과를 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의 시도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하지 않은 시도들 중엔 충분히 가치 있는 긍정적 요소들이 함께 하고 있기도 하다.

때로는 의도한 대상이나 방향을 위한 기술로 성장하지는 못해도 다른 방향의 성장을 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도가 어르신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기도 한다.

화면을 확대하거나 소리를 나게 하는 것이 그랬고 초음파 지팡이의 기술이 자동차의 후방감지기로 변신한 것이 그랬다.

오늘의 공연은 내게 커다란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떤 부분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조금만 변형하면 어떨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도 했다.

나는 그들의 시도를 응원하고 지켜보고 싶다.

오늘의 시도는 수정되거나 기존의 것들과 합쳐져서 보다 완벽한 방향을 향할 수도 있다.

혹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연은 아니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음향기술로 그 범위를 넓혀갈 수도 있다.

착한 기술을 위해 고민하고 따뜻한 공연문화를 만들려고 했던 시도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냉정한 비판이 필요한 곳도 있지만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곳들이 더 많다.

새로운 시도들을 응원하고 수많은 가능성들에 박수를 보낸다.

싹의 모양만을 보고 꽃이나 열매를 판단하는 것은 틀리거나 귀한 것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조금 관대한 마음으로 거름을 주고 물을 주는 평가를 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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