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폭력 사이

by 안승준

약속이 있던 지난 주말 오후 난 익숙한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했고 환승하기에 가장 편리한 승강장에서 열차를 탑승했고 예상하고 계산한 대로 하차하자마자 나의 눈 앞에 기다리고 있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 최종 목적지로 안내해 줄 2호선 지하철 승강장을 향하고 있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다니는 경로였기 때문에 안내 도움을 신청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나름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목적한 탑승위치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한 어르신께서는 그쪽은 복잡하니 다른 쪽으로 본인을 따라 이동할 것을 권유하고 계셨다. 난 괜찮다는 의사를 두세 번 정도 표현했지만 그의 손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내 옷소매를 반대방향으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권유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강압적인 그의 말투와 나를 끌어당기는 힘의 크기로 보았을 때 그건 강제 이동조치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불쾌하기도 했고 맞설 힘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기분 좋은 주말에 괜한 실랑이 하기는 싫어서 어르신의 의사를 따르기로 했다.

사실 그런 류의 자기중심적 도움을 당하는 것은 낯선 일도 아니었다.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한 그는 한껏 인자한 웃음까지 지으면서 스스로의 선행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 내게 부스럭 거리는 비닐 하나를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건네셨다.

낯선 이에게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선물을 받을 만큼 그와 나의 사이가 돈독한 것도 아니어서 난 또다시 정중한 거절을 수차례 표현했다.

다시 고압적인 태도로 변한 그가 주장하는 것은 본인은 이것을 주게 되어 있고 난 원래 받도록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배움이 얕거나 짧은 탓인지는 몰라도 난 그런 제도나 예정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도 듣은 바도 없었으므로 이번엔 좀 더 강한 거절의 의지를 내 보였다.

마침 도착한 전동차를 향해 나는 빠른 걸음으로 입장했고 어르신도 이번만은 그렇게 물러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열차의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출입문이 닫히기 직전 문 밖에서 무언가가 날아와서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또다시 본인의 선한 과제 달성으로 뿌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겠지만 내 기분은 정확히 그 반대쪽을 향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탄 지하철에서 어딘가 떨어졌을 그 물건을 찾아서 집어 들 능력도 내겐 없었지만 그 위치가 파악된다 하더라도 굳이 그것에 나의 소유권을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한 아주머니께서 또 다른 선의 의지로 선물이라 이름 붙여졌던 그것을 내 손에 쥐어주려 하셨고 난 반사적으로 내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난 그와 나의 관계의 모호함에 대해 설명했고 그것이 내가 가지고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물론 순간적으로 그 물건을 내게 건네주려 했던 아주머니 또한 나의 거절로 인해 애매한 입장이긴 하셨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고맙습니다." 하고 그것을 받아 들고 싶을 만큼 내 맘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나의 당황스러움과 곤란함이 내 표정으로 드러나고 있을 때쯤 그 아주머니도 아까의 어르신과 똑같은 변신 기술을 발휘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투에는 강한 확신이 있었고 나를 향해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내용은 어른이 주는 것은 받아야 하며 난 그것을 받아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몇 분도 되지 않는 사이 내 기분은 매우 좋지 않은 상태를 향하고 있었지만 한 편으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 물건은 정말로 내 것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어떤 신이 예정했던 것이기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더 이상의 저항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나의 항복으로 그것은 결국 내 가방으로 들어왔지만 두 사람이 의도했던 선한 의지는 내게 있어서만큼은 그 목적과는 매우 다른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지팡이 들고 다니는 내 앞에서 이상한 용기를 가지곤 한다.

도와줘야 한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그 방법은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본인의 주관을 철저히 따른다.

지팡이가 상징하는 상대의 약자 성은 스스로를 상대적 강자라고 느끼게 하는 촉매가 되고 그 순간 시각장애 가진 나의 생각들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익숙하게 다니던 나의 일상의 보행로도 강자가 느끼기에 위험하거나 복잡하다고 판단되면 경로를 수정하거나 진행을 멈춰야 한다.

나의 경제적 독립 정도나 필요와는 상관없이 강자가 주는 도움과 선물은 감사히 받아야 한다.

일상의 작은 사건으로 어르신과 아주머니는 각자가 믿는 신에게 오늘의 선행에 대해 칭찬받기를 바라며 기도할 것이다.

선물 겉면에 보란 듯 쓰여 있던 'xx노인회'의 어르신들은 단체로 그 기쁨을 나누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난 내가 믿는 신에게 아주머니와 어르신이 아집과 폭력을 거두고 지혜로운 선을 행할 수 있게 해 주기를 기도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지팡이 들고 있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지팡이 없이도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이었다면 그들의 선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지팡이를 들고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어른이거나 아이이거나 똑같은 수준의 존중 속에서 판단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신호등을 건너는 내가 위험해 보였는지 한 여성분께서 이렇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도움을 주려고 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오늘 내가 받은 선물은 바로 그것이었다.

선물과 폭력은 같은 의지로 출발하지만 작은 존중의 차이로 완전히 다른 결과로 나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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