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장애인 그리고 기생충

by 안승준

방학이라 모임이 잦은 요즘 두서너 명 만 모여도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강남 3구가 어쩌고 갭 투자가 어쩌고 청약이 어쩌고 하는 부동산 이야기들이다.

내 나이가 그런 것들 관심 가지는 시기가 되어서 그렇다고 하기엔 은퇴하신 어르신들을 만나도 스무 살 갓 넘긴 대학생들 만나도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이야기가 빠지지는 않는다.

조금 과장 보탠 것 같은 기사를 보면 고등학생들도 용돈 모으고 아르바이트해서 지분이라도 사려고 동아리 만든다고 하는 걸 보면 부동산 재테크는 이 시대 우리나라 국민들의 제1 관심사가 된 듯하다.

세금을 늘리고 대출규제는 강화하는 강력한 부동산 억제 정책을 내놓는 정부의 의도와는 완전히 반대방향을 향하는 집값을 경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조급한 맘으로 서둘러서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려 달려든다.

개인적으로는 누구나 적당히 노력하면 집 한 칸 정도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정상적인 최소한의 평등국가라는 사상을 가지는 나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엔 잔뜩 기운 빠진 목소리로 먼 미래엔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읇조림을 내뱉을 뿐이다.

조금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런 생각 가진 나 조차도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니 나도 최소한의 투자는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자주 한다.

결론적으로 강남으로 대표되는 부동산의 거품이 정상적인 보통의 범주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현재는 매우 희박해 보이는 것이 국민 다수의 생각인 것 같다.

소수의 다름에 대한 인식의 개선도 그와 많이 닮아 있다.

장애인에 대한 생각도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들도 어느 쪽이 옳은가에 대해 묻는다면 초등학교 도덕 문제만큼이나 쉽고 명확한 대답들을 내놓겠지만 현실의 상황은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장애를 가진 이들의 존재 가치 또한 그렇지 않은 이들과 분명히 동등하다고 외치기는 쉽지만 그런 아이를 임신했다고 알게 되었을 때의 판단은 생각과 같은 방향으로 향하기는 쉽지 않다.

신체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별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 찬성하여도 그 경쟁의 대상이 나이거나 혹은 나의 가족이라면 대답은 또 달라진다.

장애인 시설의 설립과 관련해서도 일반적인 상황에 관한 것과 내 집 주변인 것과는 달리 생각한다.

역시나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또 현실이라는 씁쓸한 결론을 맺는 때가 많다.

사람들의 인식이나 생각을 바꾸려는 일을 하는 나에게 또다시 묻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인식 수준을 다수가 갖춘 세상은 가능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올바른 쪽으로의 변화가 간절한 것들은 참으로 많지만 그것의 현실 가능성은 너무도 낮은 숫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간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행인 것은 우리가 바라는 그것들은 가능성이 낮은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작은 믿음 정도는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역사적 수상의 장면은 그것이 현실이 되기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바람이었으나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이상의 영역이었다.

백인들의 폐쇄적 우월의식, 전통이란 이름으로 합리화된 영화계의 편견들, 아시아인 스스로도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겼던 불확신 성들이 버무려져 그것은 간절하지만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또 하나의 꿈으로만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어려움이 불가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노력하면 낮은 가능성의 일들도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어릴 적 우리나라의 축구가 월드컵 4강을 정복했을 때도 박태환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도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휴대전화나 반도체가 세계 제일이 되었을 때도 비슷한 희열을 느꼈었다.

그것은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불가능이었지만 어느 순간 현실이 되었다.

단단한 장벽들은 존재하지만 무너지지 않을 장벽은 없다.

아직 무너지지 않았을 뿐이고 아직 덜 두드렸을 뿐이다.

1인치의 자막의 장벽이 깨지는 데에 100여 년이 걸렸다.

강남의 부동산 장벽도 성실한 보통사람들에게 언젠가는 깨어질 것이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왜곡의 벽들도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그 바람이 옳은 것이고 지속적이기만 하다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은 없다고 믿는다.

세상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또 다른 봉 감독들이 새로운 '기생충'으로 수많은 장벽들을 허물어뜨리는 환희의 장면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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