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타들어 가는 뜨거운 여름날 생면부지의 낯선 이에게 시원한 얼음물 한 잔을 건네받아 본 적이 있는가? 빵 한 조각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 느낄 만큼 굶주려 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천사 같은 이에게 산해진미를 대접받아 본 적이 있는가?
갈증의 해소나 배고픔의 해결이라는 말로는 너무나도 부족한 감사한 경험을 한 기억이 내게는 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불편함을 넘어선 불가능의 경험을 마주할 때가 많다.
다리 불편한 이에게 뛰지 못하는 것이 그러하겠고 시력 상실한 이에게 보지 못하는 것이 그러한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나의 장애와 직접적 관련 없는 것들 중에도 내게 넘어서지 못하는 벽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대학입시 준비하던 때 충분치 않은 점자교재들이 그랬고 정류장과는 동떨어진 곳에 서 있다가 떠나 버리는 버스들이 그랬고 안 보이면 위험하다며 탑승 거부하던 놀이기구들도 그랬다.
그런 것들은 다른 이들에겐 너무나 쉬운 것들이기에 조금만 노력하면 내게도 가능해 보이는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기에 내겐 더 큰 욕망이 되었고 더욱 답답한 짓누름이 되곤 했다.
그중 하나가 나에겐 뮤지컬 관람이었다. 동반인과 함께 가면 어찌어찌 장면 설명 들어가며 볼 수는 있었지만 그건 함께 하는 이에게도 나에게도 부담이었고 아쉬움이었다.
열심히 설명해 주는 친구가 놓치는 장면들도 내겐 미안함이었지만 그런 희생들에도 내 감상의 헛헛함이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몇 년 전 '스튜디오 뮤지컬'의 베리어프리 뮤지컬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그래서 내겐 타는듯한 여름의 얼음물이었고 쓰러질 듯 배고팠을 때의 진수성찬이었다.
시각장애인의 감상을 위해 디자인되고 장면해설이 추가된 한 편의 뮤지컬은 비로소 내게도 한 편의 작품을 스스로 온전히 감상하고 누릴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던 일상의 한 조각이었겠지만 그것이 벽이라 느끼고 살아가던 이에게 문이 되어 열리고 허락될 때의 느낌은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영영 모를 수도 있는 환희의 순간이다.
난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문장을 담아 칼럼을 썼고 당시 내가 가장 존경하던 스티브 잡스의 이름과 비교하며 베리어프리 뮤지컬을 만들어 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얼마 전 그가 쓴 '아빠가 사라졌다!' 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뮤지컬 제목이기도 한 동명의 책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뮤지컬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나의 장벽이 환희로 변해가는 시간의 진행이기도 했다.
그러한 시간들 속에서 베리어프리는 한국의 정서와 환경에 맞게 '보들 극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기존극에 해설만 입혔다고 생각했던 나에겐 글의 도입부부터 충격이었다.
행동의 묘사나 배우의 표정연기로 표현되던 장면들은 소리효과나 말소리로 바뀌고 그러한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의 감상의 몰입이나 극 전체의 어색함이 깨어지지 않게 하나하나의 수정들은 철저히 계산되고 고쳐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해설이 나오고 대사가 나올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할 것인지 구체적 설명이 필요한지 아니면 문학적 표현을 그대로 고수할 것인지 해설의 주체는 장면 해설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무대 위의 배우에게 녹여낼 것인지 해설 낭독의 시점은 전지적 일지 1인칭으로 할지... 고민은 끝이 없었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여러 장비가 활용되는 극의 특성상 'PC'는 'OS'의 업데이트 시간이나 설치된 소프트웨어의 돌발적 상황까지 고려해야 했고 일정한 장면들이 반복되는 영화와 달리 배우의 애드리브에 대비하여 모든 스태프들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를 향해 초집중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그것은 창조보다 몇 배는 어려운 재창조의 과정이었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그가 만들어 간 뮤지컬의 설계는 어쩌면 30여 년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나의 삶보다 더 철저하게 디자인되고 적응해 왔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연극은 나의 삶을 아주 많이 닮아있었고 담아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시각장애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설픈 몇 마디 조언을 건네던 내 입술이 부끄러워질 만큼 그는 시각장애인보다 더 시각장애인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했고 더 큰 마음으로 존경을 표했다.
그는 무대의 극을 보는 동안만큼은 나의 눈을 보이게 해 준 노벨 의학상 의사였고 시각장애인들에겐 스티브 잡스 보다 더 훌륭한 장치를 디자인한 과학자이고 장애인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준 훌륭한 복지가였다.
누군가의 다름에 완벽히 다가가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임을 새삼 느낀다.
나를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인내하고 고민하는 작업들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다름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의 다름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극복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각자 스스로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여러 가지 감수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쉽사리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다름에 가까이 다가가고 받아들이는 것을 바라는 만큼 그것들을 삶으로 옮기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다름을 보편의 공간으로 끌어내는 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의무는 아니기에 행하는 이들의 마음은 더욱더 순고하다.
나의 갈증을 환희로 끌어내 준 '보들 극장' 고은령 대표에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덧붙여 '보들 극장'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