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미안함에 대하여
불과 몇 주전 남편의 할머님이 돌아가셨다. 만 98세에 호상으로 돌아가셨고 잘 보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으로 가족들은 덤덤히 장례를 치렀다. 막상 옆에서 보니 임종 후 입관부터 안치까지 장례 절차를 겪으며 ‘보내드림’에는 정말 많은 게 필요하구나동시에 이렇게 끝나버리는구나란 일종의 허무함도 있었다. 나한테는 가족의 첫 장례식이었기에 이제 시작인가란 생각도 들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녕히 계시긴하지만 ‘장례’라는 게 내가 언젠가 곧 겪어야 할 것이란 생각에 더 현실처럼 다가왔다. 그러면서 어머니 아버지는 얼마나 더 많이 죽음을 옆에서 겪고 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커오면서 나는 이제야 나답게 살기 위해 항상 방황하고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인생의 후반부에서 어떤 생각을 하시며 살고 계실까. 사실 깊이 생각해본 적 없던 주제였다. 장례를 겪으면서 나는 말로 하기 힘든 죄책감? 혹은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살아 온 나날들을 존중하며 살아왔을까… 내가 불안하다고 나만 생각하느라고 조금 더 자주 뵙지 못한 채 내 삶에 집중하며 산 것에 대한 ‘죄책감’ 단순한 죄책감보단 ‘감사함’ ‘송구함’ 등이 깃든 감정이긴 하다. 그런 걸 느낄 때 찾아봬야지 생각하며 뵈러 간다. 그렇게 또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고 돌아올 때면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들은 왔다가 가기도 하며 그렇게 느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거란 생각도 들지만 가끔 꽤 오래 나를 짓누르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해도 거기서 끝이기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알기에.
가끔 이기적으로 그 언젠간 겪을 그 ‘죽음’앞에서 내 마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송구함’ 최대한 없이 이별을 겪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 치기어린 20대때 꿈꿨던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이별’이라 포장하며 그렇게 이별하고 싶단 욕심마저 든다. 속절 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나 겪는 일임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허탈감’ 동시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시간을 보내 함께 공존하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유한한 인생살이를 살아간다.
시간 앞에 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기억하는 것 아닐까. 나를 위해 하셨던 일들, 사랑으로 가르쳐주셨던 그 따뜻함. 일하는 부모님 대신 나의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혀주셨던 손길. 초등학교 때도 간호실에 누워있으면 제일 먼저 오신 할아버지. 가족들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시고 살아오신 나날들, 역할을 감당하며 행복하면서도 고됐던 나날들, 고이 간직했던 마음 한 켠 속 꿈 혹은 희망. 그것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로 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이 인생이 끝났다하여 과연 정리되는 것일까. 아니, 그것은 끝이 아니고 내리 사랑으로 그 가족이, 그 자식이 품고 살게 되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결국 오늘도 내리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남편의 할머님을 위해 같이 기도할 때 나는 읊조렸다. ‘할머니 떠나가신 후에도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또 할머님 기억하며 살아갈 힘을 얻게 하시고 하늘에서 보시기에 흐뭇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은 날들, 나를 존재하게 했던 손길과 사랑을 기억하고 가슴에 품고 살며 내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효도이자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시고 싶은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거라 확신한다. 나를 존재하게 해준 사랑을 기억하고 내 삶에도 최선을 다하자.
나를 사랑해준 사람을 생각하자. 나를 사랑하자. 또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