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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Oct 20. 2016

디자이너 남편과 산다는 것

인생에 한 번쯤 훌쩍 떠나고싶은 순간1



 신랑이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것이 시작이었다.

 

 같은 학교를 다니던 신랑과 나는 졸업반이 되었을 때 행보를 달리했다(이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을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겠지!) 나는 졸업을 몇 달 앞두고 갑자기 학교를 뛰쳐나왔고, 신랑은 전공인 아동복으로 최우수 졸업장을 거머쥐었다. 최우수 졸업이라는 영예에 걸맞게 졸업도 하기 전에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브랜드에 취업까지 성공했다. 한 순간에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고, 동기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지만 그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일 년을 매일, 죽지 못해 눈을 떠서 욕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지옥같은 일 년이 지나고 2년 째가 되자 조금씩 일이 손에 익고 속도가 붙었단다. 그러나 업무량이 과도하게 증가하고, 그 사이 몇 사람이 퇴사를 했으나 충원은 이핑계 저핑계를 대며 해주지 않아 매일 평균 10시 11시에 퇴근을 했다(그것도 혼자만). 본인보다 늦게 들어온 다른브랜드 막내들이 속속들이 막내를 탈출하고 후임을 들이기 시작하자 다시 슬럼프가 찾아왔다(이 즈음 그와 연인이 되었다). 상사에게 고충을 이야기해보라고 조언했지만 그는 끝까지 단 한 번의 불만도 토로하지 못하고 결국은 제 풀에 못이겨 그만두겠다는 말로 그간의 노고를 대신해버렸다. 실장은 그제야 충원을 약속하며 끈덕지게 그를 설득해 다시 주저앉히는 데 성공했다. 신랑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생각해도 (회사 입장에서 봤을 때) 최고의 직원이 확실하다. 업무량을 늘리고 늘리고 또 늘려도 제 시간 안에 어떻게든 끝마치고(주말출근이나 철야도 불사하며) 여자들만 바글바글한 아동복 회사에 유일하게 젊은 남자였던 것도 정말이지 큰 몫을 차지했으며, 단 한 순간도 투덜거리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일 없이 무엇이든 웃으며 받아들였으니 아주 바람직한 직원이 아닐 수 없다. 약속대로 막내가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않는 현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월급. 최하의 월급으로 시작해 매년 협상도 없이 사장 마음대로 쥐꼬리만큼 올려주며(오르는 월급을 1월 월급이 입금되어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생색은 또 얼마나 내는지... 이상봉의 열정페이 파문은 남의 일이 아니다. 도처에 그런 마인드의 오너들이 포진해 있으니. 대기업은 못되도 중견기업은 되는 회사에서 이런 말도안되는 일이 난무한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초스피드로 정직원이 되어 부러움을 샀던 신랑은 어느 순간 입사가 늦어졌던 동기생들보다도 적은 월급을 받으며 다시한번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다. 때려치자 그래도 버티자를 쉼없이 오가며 사년이 흘렀으니 이젠 결심할 때가 되기도 했지. 그는 퇴사를 마음먹었다. 이번엔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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