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물러서 보니 정말 헬조선.
나는 정치가 싫다. 정치가는 더 싫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헬조선 헬조선 떠들어대는 것도 듣기 싫고, 나라님 욕하는 것도 부질없다 생각해 싫다. 안철수가 정치판에 뛰어들었을 때, 안철수의 안티가 되었다. 정치하는 이들에 대해 조금의 기대치도 없고, 파랗든 빨갛든 다 똑같은 연놈들이라 생각하는 게 나의 정치적 입장이었는데, 사실은 참 비겁하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투표는 반드시 하는 편인데, 나의 권리를 미약하나마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이라 포기하지는 않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었다. 박근혜에게 경제성장을 기대한다거나, 나라의 평화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고, 단지 북한에 휘둘리기만 하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지 않아 박근혜에게 한 표를 던졌는데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박근혜를 찍은 내 손을 찍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문재인이 됐으면 이 나라가 달라졌을까 생각해보면 또 그것도 아니다. 처음으로 조국을 떠나 타지에 나와있으니 그 혼란 속으로 돌아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무겁다. 결혼을 해 이제 돌아가면 2세 계획도 해야 하건만 이 나라에서 내 자식을 낳아 올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식상한 고민을 이젠 나도 하게 되었다.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한다던데, 피와 땀으로 이루어놓은 민주화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으니 다시 한번 투쟁을 해야 하는가 두렵고 걱정된다. 투쟁도 좋고, 민주화도 좋고, 대통령의 하야도 좋지만 명확한 대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은 가장 두려운 일이다.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달아가는 대한민국의 실정을 나는 어쩔 수 없는 비겁자라 맞서 싸우기보단 피하고 싶다.
타지에 나와 있은 지 두 달 남짓이 되었는데 고작 두 달 사이에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소리를 한 번 들었고, 대통령이 무당에게 놀아난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국민들이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고 있다는 기사를 수도 없이 읽었다. 한 발짝 물러서 대한민국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개판도 이런 똥개판이 없다. 나라님은 하늘에서 정한다니 이 또한 대한민국이 받아야 할 업보이고, 감당해야 할 시련일까. 타지에 나와 첫 한 달은 조국이 사무치게 그립고, 대한민국만큼 살기 편한 나라도 없다며 매일 밤 신랑과 내일 돌아갈까 모래 돌아갈까 밤새 고민했었는데 이 곳 생활이 조금 적응되고 나니 대한민국만큼 헬인 곳도 없지 싶다. 다음 대선 때에도 나는 투표는 해야 한다며 당당히 투표장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까. 이젠 나의 미약한 한 표가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