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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Mar 13. 2022

반려동물 키우지 마세요.

내 집 사기 전까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싫다던 남편을 졸라 신혼집에 아기 고양이를 데려 온 날부터? 남편이 첫째의 외로움을 걱정하며 둘째를 데려오자고 말한 날부터? 한 마리만 더 데려오기로 했는데 날 때부터 붙어 지낸 자매 냥이를 떨어트리는 게 안타까워 덜컥 두 마리를 데리고 집에 들어온 날부터? 아니면, 첫 집의 좋으셨던 주인 할머니가 고양이 데리고 이사 다니기 힘드니 그냥 더 살라고 말씀해 주셨던 날부터?


이 집에 들어와서 우리는 계약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2년을 꾸역꾸역 버티듯 살아냈다. 드디어 계약 만료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집주인에게 집을 빼겠다고 통보한 날 우리는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세 살이를 전전했지만 늘 집주인 운이 좋은 편이었고, 고생을 하다가도 결국 좋은 집을 고르곤 했던 우리는 자신만만해 있었다. 이곳에서의 실패를 발판 삼아 정말 좋은 집을 골라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외벌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호기롭게 월 지출 예산을 높이며 더 좋은 집을 가 보자고 둘이 함께 선언하며 웃기도 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집은 늘 금세 구해지곤 했다. 우리는 조금 하자가 있는 현재의 집을 일단 빼고 우리의 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집이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아 매일 집을 쓸고 닦으며 사람들을 맞이했다. 결국 이 집이 빠졌을 때 이제 다 끝났다 싶었다. 얼마나 추운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때였다. 예산을 높여서 집을 보러 다녔음에도, 고양이 세 마리를 받아준다는 집은 없었다. 무리해서 예산을 높여가는 만큼 깔끔하고 좋은 집에 살고 싶었지만, 반려동물을 허락해 주는 집은 무조건 하나 이상의 하자를 가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어 매물 자체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러려면 우리 이사 왜 가는 거지?


집주인들을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내 탓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주인이 같이 살지 않는 집이니 그냥 몰래 키우라는 부동산의 달콤한 속삭임에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가계약을 걸었다. 아담한 단독 테라스가 딸린, 리모델링이 깔끔하게 되어 있는 집이었다. 조금 욕심을 내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막상 계약서를 쓰러 가니, 아니 얼떨결에 계약서까지 쓰고 보니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깔끔하게 관리한 집에 집주인을 속이고 내 욕심으로 몰래 데리고 산다는 건 집주인에게 죄송스러웠고, 혹시나 고양이가 울세라 뛸세라 종일 전전긍긍 눈치를 봐야 하는 삶을 살아낼 자신도 없었다. 그냥 계약금을 포기하고서라도, 아직은 돌이킬 수 있을 때 멈추자고, 남편과 결론을 냈다.


반려 인구는 점점 늘어난다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다 자가에 사는 거냐고 부동산에 물었더니 80% 이상은 몰래 데리고 사는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사회에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임대인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안된다 안된다 해도 꾸역꾸역 데리고 살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책임지지 않는 임차인에 대한 경험이 쌓였을 것이다. 임차인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잘 관리하고 원복까지 해 준다고 해도 절대 불가라는 답변만 돌아오는 현실에 키우던 애들을 버릴 수 없으니 어떻게든 살아 보려 했을 것이다.


그래, 다 내 탓이다. 내 집도 없는 주제에 내 욕심으로 동물을 반려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페널티를 가지고 있는 주제에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욕심을 낸 것도. 아무래도 계약을 파기해야 할 것 같다고 부동산에 얘기를 하니 집주인에게 오픈하고 허락을 구해 보겠다는 답장이 왔다. 솔직히 지금 마음 같아서는, 그냥 돈을 날리더라도 집주인이 허락해 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가 선택한 것에 겸허히 책임을 지며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살고 싶다.


어느 때보다 내 집이 갖고 싶어 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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