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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Apr 10. 2022

모태 기독교인의 고백

책을 읽읍시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한 번은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던 주제 중 하나다. 이참에 고백하자면, 나는 모태 기독교인이다. 모태 신앙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미 종교를 가졌다는 의미로 누군가에게는 축복이겠으나 누군가에게는 폭력이기도 할 테다.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종교에 대한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바로 모태 신앙인인 것이다. 모태 신앙인들은 대체로 종교를 대하는 온도가 미적지근하다. 어렸을 때는 당연한 삶의 일부로, 커가면서는 벗어나고 싶어도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작용하는 것에 뜨겁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일요일을 일요일이라 부른다거나 일요일에 가족들과 나들이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것만으로도 묘한 배덕감을 느껴야만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가 나를 아기 천사라고 부르던 때,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한 마디 한 마디 주워섬기며 단 하나도 그르치지 않으려 노력할 때, 그때가 내가 종교에 가장 뜨거웠던 시절이다. 그 열기는 아주 잠깐 머물다 빠르게 스쳐갔다.


나는 어느 날 어머니와 같은 교회에 나가는 일을 그만두기로 선언했다. "이제는 종교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제법 비장하게 말하자 어머니는 의외로 선선히 받아들이시는 듯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떠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진 못하셨다. 어머니를 안심시키고자 근처 교회를 하나 잡아 나가기 시작했으나 처음 접해본 대형 교회의 편안한 소파형 의자는 앉자마자 잠이 쏟아지는 마법의 의자였다. 어찌나 단잠을 잤던지 예배가 끝나면 개운함에 기지개를 켜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후로 몇 차례 교회를 옮겨 다녔으나 어머니의 그늘을 떠나 홀로 마주한 교회의 현실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어머니의 불안처럼 하나님을 저버리지는 않았으나 결국 교회는 저버리고 말았다.


내가 하나님을 저버리지 못한 이유는 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수업을 들으며 혼란스러웠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우리가 흙으로 빚어진 아담과 하와의 직계 자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쯤은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삶은 도무지 정답을 모르겠는 것들로 가득하고, 과학과 기술로도 설명되지 못하는 일들이 꾸준히 발견되고 있으니 나는 아직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빅뱅이 -


내가 일요일을 더이상 주일이라 부르지 않고, 일요일에 교회가 아닌 다른 곳으로 나다닌지도 벌써 5년이 훌쩍 넘었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면 슬며시 하나님을 불러 보곤 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초월적 존재가 나를 사랑하여 굽어 보고 내 길을 비추어 인도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쉽게 버리지 못하겠다. 오늘 산책을 하는데 문득, 나에게 책이 종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답이 있을까, 저 책에는 답이 있을까 하며 치열하게 읽고 또 읽는 순간은 늘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다. 내가 하나님을 찾을 때면 꼭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찾는다 한들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에서 우레와 같이 떨어지며 나에게 답을 내려주지도, 책에서 운명처럼 만난 한 문장이 나에게 길을 제시해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평소엔 잊고 있던 하나님을 염치도 없이 찾아대고, 한동안 멀리하던 책을 다시 찾아 읽기 시작할 때면 대부분 그 과정 속에서 길을 찾았다는 것이 경험으로 체득되었다.


결국 답은  안에 있고, 밑바닥 구석진 틈바구니에 박혀 있던 답을 찾아 끌어올리는 일도 내가 해야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정에 부르고 찾을 하나님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손에 책이 없었더라면, 나는  일을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여전히, 신은 존재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찾아낸 길이 옳은 길이라는 명분이 필요하니까.

 명부이 없다 아입니까 명부이.


 내가 종교에 다시 뜨거워질 날이 과연 올까?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또다시 길을 잃어버린 지금, 나에게 하나님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꽤나 아찔하다. 그러니 내가 하나님을 저버릴 확률도 그리 높지는 않을  같다. 다만 바라는 점은, 책은 부디 종교보다는   뜨겁게 대하길. 하나님은 아바 아버지시니 내가 필요할 때만 찾더라도 조금은 귀엽게  주실 수도 있겠으나 책은 나를 귀엽게 봐줄  만무하니 내가 계속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 나에게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이렇게 쓰고 보니 역시 하나님과 책은 유사성을 가지는 것이 확실하다(적어도 나에게는). 지혜를 달라는 기도는 몇십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나의 메인 기도 제목인데, 어쩌면 하나님이  기도를 듣고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얘야, 기도할 시간에 책을 읽거라. 그러니 결론은, 두드리면 열릴 것이니 책을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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