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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Apr 12. 2022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이야

그래도 계속 가자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이야. 흘러가면서 내 길을 만들 거야.

_개밥바라기 별(황석영)_

나는 늘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세상에 자취를 남길 수 있는 무언가가. 그러니까 나의 모든 선택은 더 나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정상 궤도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말았다. 삶이 조금 안정될라치면 나는 꼭 궤도에 어긋나는 선택을 함으로써 인생을 반쯤 꼬아놓고는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곤 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도 않았으면서 디자인 전문학교에 진학한 것,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를 한 것, 이름 모를 계간지라는 이유로 공모 당선을 포기한 것, 알 만한 회사의 명함과 월급을 뒤로하고 준비도 없이 퇴사한 것, 쥐뿔도 없으면서 이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누구도 나를 이 길로 인도하거나 강제한 적은 없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모든 선택은 더 나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였다. 여전히 아무것도 되지 못했지만 아무튼 그랬다는 말이다.


 브랜드 에디터로 일하며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으면서도 나는 늘 의문을 제기하는 쪽이었다. 왜 우리가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한 물살을 따라 다같이 휩쓸려야 하나요. 시키는 대로 하기 싫었을 뿐이지 나도 언제나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스스로 찾고 싶었을 뿐이다. 부모가 부자였다면 조금 달랐을까도 생각해 본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쓰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돈을 못 벌 것 같아서 디자인 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잡지사 에디터가 되면 좋을 것 같았는데 잡지사 에디터도 돈을 못 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다시 대학에 가 잘 쓰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4년 동안 학비를 벌어가며 졸업까지 완주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월세를 내야 해서 취직했고, 대출금을 갚아야 해서 퇴사하지 못했다. 그러니 돈이 많았다면 나는 궤도에서 조금 덜 이탈하는 쪽의 선택을 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되돌아가 번복하고 싶은 선택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선택이든 잘못  선택이든 그것이 운명이자 필연이었다고 믿고 넘어가는 일은 내가 가장 잘하는   하나다. 너덧 번은 족히 읽었던 책에서 처음  듯한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이야. 흘러가면서  길을 만들 거야. 나는  문장을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누구도 나를 궤도 밖으로 떠밀거나  손목을 붙들끌고 나온 적은 없다. 모든 것은  선택이었다. 그러니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궤도를 정상적으로 오르고 있는 사람은 그 길에서 낙오되는 것이 두렵겠지만 이미 궤도에서 떨어져나온 사람의 두려움은 딱 한 가지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 나를 나로 지켜내는 일이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명이 되는 것이다. 나를 잃어버린다는 건 실패가 아니라 죽음이니까, 죽지 않기 위해 자꾸만 발악을 하는 것이다.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아니라, 흘러가면서 내 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 없이 안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나의 길이 여기서 끝날 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계속 가 보는 수밖에. 나는 이미 궤도에서 이탈했고, 내가 걷는 길은 어디나 뒷길일지도 모르지만, 내 발자국이 닿는 모든 곳이 길이 된다고 믿으며, 계속 걸어 나가 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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