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문제는 집이지
세상은 우리를 부모보다 가난해질 첫 세대라 부른다. 젊은이들은 염세주의에 빠져 당당하게 욜로를 외치다 말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살다 죽을 수는 없다며 재테크 지옥에 빠졌다. 우리는 모두 부자를 꿈꾼다. 오늘을 부자로 살든, 내일의 부자를 꿈꾸든,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날을 꿈 꾸는 것이다.
우리는 연봉을 높이기 위해 이직을 계획하고, 누군가는 창업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스펙 쌓기에 열중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바닷가 마을로 이주해 서퍼가 되고, 또 누군가는 시골로 내려가 소박한 자급자족의 삶을 이루기도 한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모여들었던 젊은이들은 해가 지날수록 서울살이의 팍팍함을 체감한다. 나는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집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한 달 지출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주거비라는 것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월세를 내든, 대출금을 갚든,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우리는 멈출 수 없다. 멈추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삶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쉬지 않고 다리를 굴리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얼마나 멀리 왔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러닝머신 위에 선 듯 제자리에서 헉헉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달린다. 멈출 수 없어 달린다.
가끔 나는 댓글들을 본다. 댓글들을 읽고 있으면 세상이 무서워진다. 사람들은 대부분 화가 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비난하고 무시한다. 그 비난은 지나치게 원초적이다. 누군가의 출신 대학, 출신 지역, 거주하는 동네, 재직 중인 회사를 멸시하고 비웃는다. 그런 댓글을 쓰고 있는 모니터 너머의 누군가는 과연 어느 대학을 나왔을까, 어디에 살고 있을까, 어디에 소속되어 있을까 상상해 본다. 그러다 문득, 집 밖을 나서기 무서워진다. 어쩌면 그들이 다수일 수도 있다. 내가 거리를 걸으며 스쳤던 누군가일 수도 있다. 내가 오늘 웃으며 이야기했던 누군가일 수도 있다. 나는 어디 즈음에 있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우리는 아이 낳기를 꺼린다. 부모보다 가난해질 첫 세대라는 것을 누구보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 내가 어릴 때 누렸던 것들을 과연 내 아이에게도 누리게 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어릴 때 누렸던 것들도 그다지 특출 난 것들은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그조차도 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굳이 이 난잡한 세상에 씨를 뿌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자조적으로 웃는다. 내 한 몸 누일 집도 없는데, 하며 허탈한 어조로 끝을 얼버무린다. 나이 든 사람들은 우리를 이기적이라 한다. 자기만 생각하는 젊은이들 때문에 출산율이 낮아지고 경제 발전이 둔화된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이기적인 걸까? 우리가 정말 나만 생각하느라 부모가 되기를 거부하는 걸까? 우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부모보다 가난해지고 있는데, 내 아이는 나보다 가난해지는 것을 두고 보란 말인가.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출산인가.
우리는 까치발을 들고 서울의 끝에 올라서 있다. 서울 너머가 경기나 대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낭떠러지라도 되는 듯하다. 우리는 말한다. 서울을 벗어나면 먹고 살 방도가 없다고. 한 번 서울을 벗어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거라고. 가뜩이나 좁은 땅에서 모두가 서울을 열망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지만, 별다른 묘수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에 정착할 수도, 서울을 벗어날 수도 없는 어떤 굴레에 들어서 버렸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집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월급쟁이로 살며 내 집까지 마련하기에는 갈 길이 아득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도 서울을 벗어나고 싶은 열망과 서울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양옆에 두고 저울질한다. 주말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우리는 다시 회사로 발걸음을 움직인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